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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무기]北 잠수함 찾는 '바닷속 뱀장어', 한국형 예인음탐기

김관용 기자I 2016.04.10 09:01:34

해군 함정에 탑재, 적 잠수함 조기에 탐지·식별·추적
저소음 잠수함의 장거리 탐지 위한 정밀 신호 처리 기술 적용
광개토대왕함에 첫 적용, 해군 주요 구축함 대잠작전 지원
경량케이블로 수심 얕은 서·남해서도 운용 가능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이무기는 상상 속 동물이다. 이무기는 천 년을 물속에서 살며 기다리다 때를 만나면 천둥, 번개와 함께 승천해 용(龍)이 된다. 우리 군은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1960년대부터 국산무기 개발을 위해 노력해 왔다. 50년 동안 쌓아온 기술력은 해외 수출로 이어지며 결실을 맺고 있다. ‘용이 된 이무기’ 국산무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우리 해군의 대표적인 잠수함 탐지 체계는 ‘예인음탐기’다. 끌어서 당긴다는 의미의 ‘예인’(曳引)과 수중 목표물의 거리 및 방위를 측정하는 ‘소나’(SONAR)를 의미하는 음탐기(音探器)의 합성어다. 예인음탐기는 저주파가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특성을 이용해 잠수함의 추진기관과 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저주파 기계 소음을 원거리에서 탐지하고 식별하는 방식으로 적 잠수함을 탐지한다.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예인음탐기는 선배열 예인음탐기다. 선배열은 소리를 듣는 음향센서를 일정 간격으로 연결했다는 의미다. 음향센서가 낮은 대역의 주파수까지 탐지하려면 이 간격이 넓어야 한다. 센서에 튜브를 씌워 물속에서 길게 늘어뜨려 사용한다. 예인음탐기는 총 길이가 2200m나 된다. 이중 핵심인 센서부는 직경 86~89mm, 길이 320m다.

센서부는 케이블 연결모듈(1m), 진동격리모듈(4개·22m), 전원공급모듈(11m), 비음향모듈(11m), 신호전송모듈(11m), 초저주파음행모듈(8개·11m), 저주파음향모듈(4개·11m), 고주파음향모듈(22m), 후미안정화모듈(22m)로 구성돼 있다.

광개토대왕함 승조원들이 기동훈련 중 예인음탐기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해군 제공]
◇한국형 구축함에 탑재, 北 잠수함 탐지

북한은 적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는 잠수함과 잠수정 전력을 지속적으로 육성해 왔다. 중국으로부터 도입한 잠수함과 자체 기술을 통해 잠수함 및 잠수정(소형잠수함) 개발에 몰두했다. 2014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우리 잠수함정이 20여척인데 비해 북한이 보유한 수량은 70여척으로 3배 이상 많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반도 주변에서의 한국해군 수상함은 미국산 선체 고정형 음탐기(HMS)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항공기용 소나인 ‘소노부이’의 지원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미국의 예인형 선배열 음탐기(TASS)인 AN/SQR-19를 도입하려 했으나 미국의 판매 금지 정책으로 도입이 불가능했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ADD)는 항만감시체계 기초연구를 통해 광대역 선배열 센서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의 잠수함 전력을 견제하기 위한 구축함(KDX)과 예인 음탐기 체계의 필요성이 커지자 1991년 11월 해군은 국내개발을 전제로 한 무기체계 소요를 제기했다.

ADD는 1993년 선행개발을 시작했다. 이어 1996년 실용개발을 거쳐 1999년 선배열 예인음탐기 체계 개발에 성공한다. 선배열 예인음탐기는 한국형 구축함(KDX)의 첫 번째 함정인 ‘광개토대왕함’(3200t)에 탑재됐다. 이후 3000톤급 이상의 전투함에는 모두 예인음탐기를 탑재했다.

◇여관 옥상이 작업장, 반복되는 ‘뱀장어 수술’

예인음탐기 개발 당시 연구원들은 실험실에서 이를 직접 제작하다 보니 막상 해상에서 시험을 하는 도중에 고장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곤혹스러운 고장이 호스 내부의 신호선이 끊어지는 상황이었다. 통상적으로 동해 외해에서 시험을 하다가 이런 고장이 발생하면 시스템 전체를 일단 숙소(여관)로 옮기고 밤이 되도록 기다려야 했다. 여관을 오가는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수 없는 보안 문제 때문이었다.

센서부 길이가 길기 때문에 아무 곳에서나 점검하지 못하고 여관 옥상 정도는 돼야 했다.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톤 단위를 넘어가는 무거운 시스템을 좁은 여관 통로를 통해 운반해야만 했다. 누가 보면 안 되기 때문에 옥상에 전등을 켜지도 못하고 손전등을 비추어가며 호스 일부를 가르고 센서들과 신호선들을 꺼내어 하나씩 점검했다.

ADD 관계자는 “끊어진 부분들을 찾아 연결하고 신호상태를 확인 한 후 다시 호스 속에 넣고 역으로 조립하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의사가 수술하는 과정과 다를 바 없었다”면서 “그래서 이를 뱀장어 수술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음탐을 분석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해양환경(음속구조)에 따라 음파가 한곳에 뭉치기도(수렴구역)하고 거의 도달하지 않기도(음영구역)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시험에 참가한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물속에서는 음파가 다니는 길이 따로 존재하고 그 길을 결정하는 것이 음속구조란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예인음탐기가 표적에서 가까울수록 잘 탐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1995년 9월 대전함에서 진행된 선행 시제품 해상시험에서 개발자들이 예인음탐기 케이블을 풀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장거리 탐지 성공

성능시험 평가 당시 동해에서 깊이 잠항하는 잠수함을 얼마나 먼 거리에서 탐지할 수 있는지가 체계 개발에 참여한 군과 개발자들의 관심사였다. 연구실에서의 시뮬레이션과 육상에서의 시험 장비를 이용한 장비 성능시험에서는 설정했던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바다에서 음파전달 환경의 변수가 많아 해상에서의 탐지 성능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1998년 9월14일 ADD 시험선 선진호에 예인음탐기 개발 시제품을 탑재해 포항 해군 부두에서 해상시험 해역으로 출항했다. 잠수함 신호를 모사해 발신하는 표적물은 부경대 시험선인 탐양호에 탑재했다. 탐양호는 포항 연안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모의 표적을 잠수함 잠항 깊이에서 끌고 갔다.

동해 시험 해역에 도착한 선진호에서 예인탐지기 센서를 바다에 내려서 센서신호가 정상적으로 수신되는 것을 확인하고 시험을 시작했다. 센서심도를 150m로 끌어내렸으며 선진호는 울릉도를 향해 이동하면서 표적을 탐지했다. 50km까지 표적탐지가 가능한 것을 확인한 개발자들은 최대 탐지거리가 얼마나 되는 지 확인하기 위해 배를 울릉로 인근까지 몰고 갔다.

표적이 74km 전방에서 탐지됐을 때 이미 울릉도 근해여서 더 이상 시험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국내 최초로 잠수함을 원거리에서 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예인음탐기 주요 핵심부품은 국내 독자기술로 설계·제작됐다. 비교적 얕은 바다인 서·남해와 심해인 동해가 공존하는 우리나라 해역의 대잠 환경에서 최적 운용이 가능하도록 개발한 게 특징이다. 서해는 수심이 얕아 중량케이블을 길게 내릴 수가 없다. 따라서 300m 경량케이블을 적용해 예인함의 방사소음이 센서에 미치는 간섭을 최소화켰다. 센서심도 30m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다.

어선의 어로활동이 빈번해 수중 배경 소음이 높은 대잠 환경에서도 미세한 잠수함 소음을 탐지할 수 있도록 정밀 주파수 분석 능력이 뛰어나다. 적의 어뢰공격 시 어뢰발사 순간 소음을 자동 탐지해 경보하는 순간 소음 탐지기능도 갖추고 있다. 특히 음향 기만기를 함 주변에 살포해 어뢰로 착각하게 함으로써 우리 함정은 긴급히 회피 기동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예인음탐기 체계는 최대 1800m의 케이블로 수심 300m 아래까지 탐지할 수 있다. 잠수함이 내는 소음을 대역별로 탐지하고 추적하며 아군인지 적군인지 식별 업무까지 수행한다. 여기에 표적 위치 추적 정보를 이용한 표적의 움직임 분석(TMA) 기능도 갖추고 있으며 적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전송한다.

선배열 예인음탐기는 우리 해군이 북한의 재래식 잠수함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항만감시체계와 이동형 수중조기경보 체계인 저주파 예인음탐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한 발판이 됐다.

예인음탐기 체계(TASS) 운용개념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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