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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투자 전문가 구합니다'…채용 못해 늙어가는 기관들

김대연 기자I 2023.03.03 04:00:00

[인력난 겪는 큰손들]
매해 큰손들 운용역 '인력난'으로 골머리
낮은 임금 문제 등 직원들 이탈 '우르르'
지원자 줄어드는 데 모집 인원 미달까지
공공기관 채용 인원 감축 영향도 불가피
고령화 현상에 부담…갈 길은 '첩첩산중'

[이데일리 김대연 기자] “시장 상황이 좋건 나쁘건 상관없다.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해 지난 1년 내내 전문 운용역들을 채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계원들이 꼬박꼬박 낸 곗돈을 제때 목돈으로 받기 위해선 그 돈을 관리하는 계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작금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회원들이 매달 납입한 저축금을 굴려 종잣돈으로 만들어주는 연기금과 공제회야말로 ‘현대의 계주’ 실사판이라고 할 수 있다.

머지않아 오는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둔 대한민국. 자신의 노후생활을 대비하기 위해 일찍이 각종 연금과 저축상품에 가입하는 모습도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대부분 기관투자가는 곗돈을 불려야 한다는 부담감은 커지는 반면, 수년 전부터 부족한 일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치솟는 금리에 시장이 요동치면서 지난해 큰손들이 손실을 피하지 못한 가운데 정부의 공공기관 정원 감축 방침에 따라 우수한 운용역을 들일 기회마저 잃으면서 올해 인력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국내 기관투자가 자산운용부 직원 수. (자료=각 기관)
◇ 회원들 의존도 높아지는데 인력난 비상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이 지난해부터 연이어 전문 운용역 채용 공고를 내면서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고자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약 90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도 예외는 아니다. 이 밖에도 공무원연금·교직원공제회·노란우산공제·경찰공제회·대한소방공제회 등 대다수 기관들이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 전문가를 찾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중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모집 인원이 미달해 재차 공고를 내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인사발령으로 겸직 체제를 발동하는 등 때 없는 인력난에 시달리기 일쑤다.

실제로 경찰공제회는 지난해 5월·8월·11월 자금운용 전문계약직 채용 공고를 냈는데도 현재 대체투자2팀장이 공석인 상태다. 지난해 주식운용팀을 구축한 데 이어 올해는 팀장의 빈자리를 메우는 등 채권운용팀 인프라 확충에도 나설 계획이다. 사학연금도 지난해 9월 증권운용실장이 내부 승진하면서 투자전략실장이 증권운용실장을 겸직하다가 지난 1월 인사 때 인력을 보충한 바 있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열 명 남짓한 인원으로 구성된 부서인데 해마다 1명 이상 나가는 추세”라며 “최근 자금운용부서 운용역을 모집했는데 예비 합격자까지 입사를 포기해 공고를 다시 낸 적도 있었고, 대체로 직원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급격하게 줄어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다른 기관도 5명 뽑는데 5명이 지원하는 등 예전에 비해 경쟁률이 많이 낮아졌다”고 덧붙였다.

빠져나가는 인력 붙잡아야 큰손도 산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인력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저임금’으로 꼽는다. 대부분 기관투자가는 운용자산(AUM) 규모가 커지면서 내부 직원들로만 자산을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어 외부 인력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전문 운용역 자격요건은 까다로운데 계약직이고 보수도 적은 탓에 결코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외부적으로 기관투자가와 민간 운용사 간 보수의 격차나 인센티브 책정 방법, 정규직 전환 문제 등에 대한 불만도 커지는 모습이다.

특히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의 인력 이탈 문제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17년 기금운용본부가 서울에서 전라북도 전주로 이전한 이후 지방 근무에 애를 먹은 운용역들이 대거 퇴사하면서 인력 공백에 대한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급속한 고령화에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오는 2055년으로 2년 더 빨라진 가운데 인력난을 해소하지 못하면 안정적인 자산 운용에도 치명타가 올 수 있어 우려가 크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어떤 회사든지 서울에서 근무한다고 해도 연봉이 낮으면 입사를 고민하는 게 현실”이라며 “연기금과 공제회 차원에서 자산 규모가 크면 그만큼 인력을 투입하려는 노력이라도 하는데, 규모가 적은 곳은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실시된 공공기관 정원 감축 정책으로 몇몇 기관들은 신규 채용을 일시 중단할 것을 검토 중이다. 이처럼 새로운 인재를 뽑는 게 막힌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기관투자가 차원에서 노련한 인력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문 운용역들이 민간 자산운용사나 관련 기업으로 이직했을 때 높은 급여를 받아 공적단체의 보수의 격차가 많이 나는데, 또 그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며 “젊은 계층에서는 결혼 계획 등으로 지방 근무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서울 근무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들을 유인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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