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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품은 K팝]②K팝의 세계관 누가 만들까? A&R 주역 정병기(인터뷰)

김은구 기자I 2019.03.08 06:00:00

전문가 정병기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상무 인터뷰

정병기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상무(사진=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구축하려면 서사 구조가 치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아이돌 그룹 멤버들 각자에게 캐릭터를 부여해야 하고 일관성 있게 유지해야 합니다.”

정병기(41)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상무는 K팝 속 서사와 세계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조건을 이 같이 설명했다. 정병기 상무는 걸그룹 이달의 소녀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스토리텔링과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는 “H.O.T 등 1세대 이후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데뷔하고 기획사 입장에서는 노하우가 쌓였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얼굴 이외에 새로움을 찾는 게 쉽지 않았고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요소로 떠오른 게 서사, 더 나아가 세계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사나 세계관이 아이돌 그룹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기존 아이돌 그룹들과 차별화되면서 팬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병기 상무는 세계관의 예로 인기 애니메이션 ‘스머프’를 들었다. 여러 캐릭터의 스머프들이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게 세계관이고 그 인물들과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다는 것이 서사라고 설명했다.

정병기 상무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는 A&R(Artists & Repertoire)이다. K팝이 글로벌 무대에서 각광을 받고 아이돌 그룹들의 서사, 세계관에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분야다. 아티스트를 발굴, 계약, 육성하고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끌고갈지를 결정해 제작까지 맡는 게 A&R 담당자의 업무다.

정병기 상무는 이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효리&에릭 ‘애니모션’, 아이비 ‘유혹의 소나타’, 조PD와 인순이 ‘친구여’, 신화 ‘Brand New’, 브라운아이드소울 ‘정말 사랑했을까’ 등의 A&R을 담당했다. 2007~2011년 JYP엔터테인먼트, 2012~2015년 울림엔터테인먼트에서 다양한 그룹들과 작업을 함께 했다. 글로벌 음반 레이블인 소니뮤직이 한국에서 아티스트 자체 제작을 하기 위해 지난해 영입해 자리를 옮겼다.

정병기 상무가 A&R을 맡아 세계관을 구축한 걸그룹 이달의 소녀가 최근 발매한 앨범 ‘멀티플 멀티플’ 재킷. 타이틀곡 ‘버터플라이’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이달의 소녀 멤버들이 특유의 세계관 속 멤버 고원의 상징물인 나비를 연상케 하면서 앨범에 대한 팬들의 다양한 해석을 유발했다.(사진=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정병기 상무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클럽,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데뷔시키지만 한국에서는 가수 지망생, 연습생들에게 음악을 초기단계부터 가르치는 경우도 많다”며 “서구에서는 아이의 옷장에서 입을 옷의 순서를 정하는 게 A&R의 역할이라면 한국은 옷장을 사주고 쇼핑을 해서 채워주는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A&R은 레퍼토리를 정해주는 게 아니라 메이킹 형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콘셉트를 결정하고 스토리를 만들고 거기에 맞는 곡, 뮤직비디오, 의상, 사진, 안무 등 전문가들을 연결해주는 것도 A&R의 역할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A&R 업무를 시작한 게 20년 가까이 됐지만 국내 기획사들에서 이 업무가 보편화된 것은 10년이 채 안됐다. 좋은 가수가 있으면 좋은 음악을 연결해주고 방송 출연을 열심히 시키면 스타로 만들 수 있었던 시기에는 A&R의 비중이 크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A&R은 K팝이 산업적으로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분야가 됐다. 정병기 상무는 “아티스트의 성공이 소속사 대표의 직관과 감에 의지하다 대중의 문화적 흐름을 읽어야 가능해지는 시기로 변했고 그 역할을 A&R 담당자들이 하는 것”이라며 “10여년 전 ‘꽃미남’이라는 단어가 유행을 할 때 그걸 신인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로 잡는 것이 산업적인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병기 상무가 보는 가요 기획사 A&R 담당자의 자격은 음악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 문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읽는 능력이다. 요즘 ‘덕후’로 불리는 아이돌 그룹 팬 활동을 깊이 있게 한 것도 좋지만 제너럴리스트도 관계 없다고 했다. 일반 대중 앞에 내놓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각 기획사마다 신입사원의 자격 요건을 정하지만 굳이 대학을 안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특별히 유리한 전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병기 상무 자신도 해외에는 A&R이라는 업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개인적 관심으로 독학을 하듯 공부해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A&R 담당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티스트를 물었다. 망설임 없이 박진영을 꼽았다.

“A&R의 역할을 너무 잘 이해해준 아티스트예요. 자신의 음반을 제작할 때 자신이 플레이어가 되는 순간 A&R에 귀를 기울이죠. ‘내가 프로듀서다’ ‘내가 음악을 더 잘 안다’ ‘내가 히트곡이 많다’ 같은 말을 전혀 하지 않고 철저하게 플레이어로 돌아가요. A&R 하기에 좋은 가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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