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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해우소] 40대 女 노동자가 남긴 유서 7장

황효원 기자I 2021.06.19 00:01:00

"지옥 같았던 한달" 건설현장 여성 노동자 극단 선택
'직장내 괴롭힘 금지' 2년 지나도 피해자들 실제 구제 받기 어려워
괴롭힘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는 조사 매뉴얼 필요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경북 포항의 한 건설업체 여성 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 등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노동계가 가해자에 대한 엄중처벌 등을 촉구했다.

남성이 대부분인 건설 현장에서 폭언뿐만 아니라 성희롱에 시달렸다. 더욱이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직장 내 괴롭힘에 성희롱까지” 포항 여성 노동자 극단적 선택

“살고 싶어서 현장에 나왔지만 너무 치욕스럽고 무시당하며 살고 싶지 않다”

경북 포항의 한 여성 노동자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다.

지난 4월 철강 공단 내 공장건설 현장에서 화재감시원으로 일을 한 A씨는 지난 10일 오후 자신의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A씨는 자재 정리와 같은 부당한 업무뿐만 아니라 는 물론 남성 관리자들로부터 폭언과 성희롱에 시달렸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A씨는 비인격적인 대우를 견디며 쇠파이프 100개를 옮기라는 지시도 묵묵히 따랐다.

노조 측은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사실을 안 가해자들이 A씨에게 2차 가해를 한 정황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해당 건설업체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일용직 직원이지만 도의적인 책임을 다하겠다며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서효종 전국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 국장은 “기본적인 호칭이 ‘야’,‘너’,‘어이’ 같은 반말에 폭언이었다”며 “일상적으로 계속 피해를 입었는데 6월에는 현장 작업 도중 관리자에게 성희롱 발언을 듣고 수치심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A씨 사건을 계기로 노조는 지역 건설현장 여성 노동자 79명에 대한 긴급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11명이 직접적인 성희롱과 성추행 또는 폭언피해를 겪었고 16명은 동료가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노동청은 해당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에 나섰다.

“성추행 신고했더니 업무배제”…직장갑질 7.8%가 성범죄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당한 제보 상당수가 문제제기를 한 뒤 업무에서 배제되고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고 밝혔다.

올해 1~5월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이메일 제보 1014건 가운데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등 직장 내 성범죄 제보는 79건으로 전체 제보의 7.8%에 달한다. 지난 3년 동안의 성범죄 제보 비중(4.8%)보다 1.6배 늘어났다.

일터에서 성희롱, 성추행을 당해도 신고하기 쉽지 않은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집단 따돌림 등 피해자에게 조직적으로 가해지는 보복이 꼽힌다. 회사가 처음에는 성폭력 피해자를 대기발령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다가도 가해자의 공백으로 인한 업무 부담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거나 주요 업무에서 배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직장 내 성범죄는 명백한 성폭력범죄로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계 또는 위력으로 간음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또 수강명령, 치료프로그램 이슈명령 등 처벌에 관한 특례도 적용받는다.

성범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직장 내에서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관련 요구 등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로·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직장 내 성희롱으로 제재받는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직장 내 성범죄의 원인으로는 솜방망이 처벌이 꼽힌다.

성범죄 신고에 대한 보복조치를 처벌하는 법 조항이 존재하지만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근로계약관계가 아닌 하청·용역·파견·프리랜서 등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2018~2019년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신고 건수는 2380건이지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된 건은 20건에 불과하다”면서 “처벌조항이 사문화된 셈으로 엄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어 “회사가 조치, 조사 의무를 위반했을 때 시정을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을 보완하고 괴롭힘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는 조사 매뉴얼 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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