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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업계 1위인 ‘산와머니’도 올해 초부터 신규 대출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대출해봐야 손해라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지금은 사실상 정상적으로 대출하는 회사가 거의 없는 상황이에요.”
한 대부업계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연이은 법정 최고 금리 인하로 대부업체의 대출 마진이 바닥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떼일 우려가 큰 저신용자 신용 대출을 꺼리게 됐다는 얘기다.
서민의 마지막 자금줄인 대부시장의 대출 잔액이 6년여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서민을 돕겠다며 추진한 최고 금리 인하 정책이 오히려 저신용자가 대부업체에서조차 돈 빌리기 어려워지는 역효과를 부른 것이다. 대부시장에서 밀려난 서민은 결국 사채나 미등록 대부업체 등 불법 사(私)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세부 현황 파악과 피해 방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업 대출액 6년 6개월만에 첫 감소
1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한 국내 대부업체(개인 대부업자 포함)의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현재 17조3487억원으로 작년 6월 말보다 0.6%(983억원) 줄었다. 대부업 대출 잔액이 반년 전 대비 감소세를 보인 것은 2012년 6월 말 이후 6년 6개월 만에 최초다.
작년 말 대부업 대출 이용자 수도 221만3000명으로 6개월 전보다 15만4000명이나 급감했다. 대부 이용자는 2015년 말부터 3년 연속 감소세다. 특히 은행·저축은행 등 1·2금융권 금융회사를 이용하기 어려운 신용등급 7~10등급 사이 저신용자 비중이 줄고 있다. 대형 대부업체 이용자 중 7~10등급 비율은 2017년 말 전체의 74.9%에서 지난해 말 72.4%로 내려앉았다. 대부업체조차 저신용자 대출을 기피한 결과다.
반면 대부업체가 안전한 대출을 우선하여 취급하는 보수화 경향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실제로 대부업체의 담보 대출 잔액은 1년 새 8000억원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신용 대출이 1조원가량 급감한 것과 대조적이다.
금융당국은 대부업 대출액이 감소한 원인을 “과거 저축은행 사태 당시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한 대형 대부업체가 올해 6월 말까지 대부업 대출 잔액을 40% 이상 줄이기로 했고, 업체 자체적인 대출 심사 강화와 정부의 서민 금융 상품 공급 확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업계 설명은 다르다.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현 정부 출범 당시 법정 최고 금리를 연 20%까지 낮추겠다고 예고하면서 이미 2~3년 전부터 대부업계는 신규 대출 영업을 거의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했다”며 “대출 잔액 감소는 이미 예정돼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법정 최고 금리는 과거 정부에서도 계속 인하했지만 당시엔 저금리 환경에 따른 조달 금리와 대부 중개 수수료 인하, 자체 인건비 절감 등으로 어느 정도는 마진을 남길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더는 허리띠를 졸라맬 게 없는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라고 전했다.
법정 최고 금리는 2011년 6월 연 39%에서 2014년 4월 34.9%, 2016년 3월 27.9%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2월 또 한 차례 인하해 현재는 연 24%를 적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은 이를 임기 내 연 20%까지 낮추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민의 이자 상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선량한 목적으로 추진한 정책이 되레 이들의 대출 문턱을 높여 초고금리의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모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며 공약 이행을 일단 보류한 상태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 원장은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사람의 15%는 이자율이 연 100%가 넘는 사채 등 사금융 시장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2금융권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대출 규제 시행 등으로 앞으로 대부업계의 담보 대출 증가, 신용 대출 감소 추세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며 “대부업체를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게 아니라 이를 통해 사금융 수요를 적절히 흡수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국내 불법 사금융 시장의 실태를 재조사해 그 결과를 자세히 분석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