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받으면 어쩌지”…`계엄사태` 후폭풍에 몸 사리는 경찰들

김형환 기자I 2024.12.16 16:44:15

윗선 지시 거듭 확인…“책임 소재 민감”
젊은 경찰 중심 ‘상명하복’ 문화 거부감
“통제 불가” 토로…시민들에게 욕 먹기도
전문가 “경찰국 폐지 등 독립성 보장해야”

[이데일리 김형환 정윤지 기자]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경찰 조직 내에 불안감이 크게 번지고 있다. 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에서 경찰의 대응에 대한 책임을 물어 조지호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가 구속됐고, 그 여파가 부하직원들까지 미치는 모양새가 되고 있는 탓이다. 특히 각종 집회에 투입되는 기동경찰들은 상부에 조치에 대해 위법성이 없는지 거듭 확인하는 등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려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계엄 사태가 경찰 독립성이 흔들렸을 경우 생기는 문제점들을 보여준다며 경찰 독립성을 위한 조직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국회의 의결로 해제된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배치됐던 경찰버스가 철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젊은 경찰 중심으로 ‘상명하복’ 문화 거부감 증가

14일 이데일리가 만난 경찰들은 계엄 사태 이후 자의적 판단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인천경찰청 소속 간부급 경찰 A씨는 “워낙 현장이 많다 보니 자의적으로 판단해 조치를 하고 보고를 했던 부분이 있다면 이제는 그러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지시를 받는 부하들도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고 이로 인해 윗선에 한 번 더 확인을 받고 조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와 맞불 집회가 이어지며 현장에 대규모의 경력이 투입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도 평소와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라면 지휘부의 지시에 별다른 의심 없이 움직였겠지만, 이번 계엄사태 이후 지시에 문제점은 없는지 혹시 모를 법적 책임을 질 상황이 벌어지진 않을지 수차례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경우 계급이 있는 조직인 만큼 ‘상명하복’ 문화가 강하다. 이로 인해 대부분 윗선의 지시를 그대로 받아들여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난 계엄 사태 이후로 ‘혹시나 나도 처벌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조직 전체로 퍼지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려 하는 성향이 강해진 것이다.

특히 젊은 경찰들 사이 이 같은 분위기가 퍼지고 있었다. ‘상명하복’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있었지만 딱딱한 조직 분위기 탓에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에서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B(31)씨는 “경찰관 행동강령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당한 지시는 거부할 수 있다”며 “그간 젊은 경찰들은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도 불만을 표출하진 못했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확실히 짚고 넘어갈 건 가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서울 내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김모(39)씨도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시민들과 충돌하게 되는 기동대는 원래도 회의감이 많이 드는 곳”이라며 “조직이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이번 일로 더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란 혐의를 받는 조지호 경찰청장이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민 눈총’에 기죽는 경찰들…“경찰 독립성 보장해야”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계엄에 동조했다’는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대응 하나하나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경찰들도 상당수다. 한 기동대 소속 경찰은 “예를 들어 집회 현장에서 차도와 인도를 구분해서 관리를 하더라도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경우 과거와 같으면 적극적 통제를 했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후배들도 시민들에게 ‘너희가 그럴 자격 있냐’며 욕을 먹고 기죽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현장 경찰들은 이제 내부 조직 문화가 ‘상명하복’에서 민주적인 결정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관기 전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지난해 조직개편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 현장 경찰들은 고통을 끊임없이 호소해 왔고, 이런 불신 역시 이러한 지휘부에 대한 불신에서 왔을 것”이라며 “현장 경찰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경찰 조직을 원상복구하고 민주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경찰 정치 중립’이라는 헌법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2022년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로 경찰 인사권에 막대한 힘이 생기며 경찰이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그렇기 때문에 경찰법 집행에 상당히 위축받고 국민에게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국을 폐지하고 현재 실효성이 없는 국가경찰위원회에게 힘을 실어주는 개혁안이 필요하다”며 “개혁을 통해 실효성을 가진 위원회가 경찰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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