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부가 2일 내놓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강화 방안’에는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책도 상당 부분 담겼다. 사업성을 높이고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 민간 도시 정비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월세시장 불안정을 부채질해 대책 효과를 되레 깎아내릴 수도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대책에 포함한 규제 완화 방안에는 그간 업계에서 제도 개선을 거듭 요구했던 세부적인 내용이 꽤 많이 들어 있다.
재건축 조합을 설립할 때 지금은 전체 아파트 소유자 4분의 3 이상, 동(棟)별로도 3분의 2 이상 가구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앞으로는 동별 동의 요건을 2분의 1 이상으로 완화하고 면적 기준도 없애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단지 내 상가 소유자 등이 보상비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알박기’를 방지해 사업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도지사가 가진 정비구역 지정 권한은 시장·군수에게 넘겨진다. 현재는 시장·군수가 정비계획을 수립하면 도지사가 이를 승인하고 확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절차를 간소화해 구역 지정 기간을 6개월 이상 줄일 수 있다고 국토부는 보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사업 용지 또는 용지 안에 도로·공원 등 기반시설을 조성해 정부와 지자체에 무상으로 내놓는 기부채납은 일부를 돈(현금)으로 낼 수 있게 된다. 기반시설이 이미 잘 갖춰진 곳의 재원 낭비를 막고, 조합도 그만큼 사업 부지를 더 쓸 수 있게 돼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준주거·상업지역에 짓는 재개발·재건축 단지는 전체 바닥면적의 일정 비율을 오피스텔로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재개발·재건축 사업 용적률을 높여준 대가로 지자체가 표준건축비만 내고 가져가는 임대주택도 분양 전환 임대일 경우 5년 공공임대는 땅값의 50%, 10년 공공임대는 30% 정도를 조합에 보상하도록 할 방침이다.
재개발·재건축 구역 주민이 아닌 전문가가 전문 조합관리인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추진위·조합설립 동의서에 기초지자체 검인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새로 도입한다.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여 지지부진한 정비사업에 속도를 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장기간 사업이 지연된 곳은 조합원 과반수 동의를 받아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을 사업 대행자나 전문관리업체로 선정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존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의 연장 선상에서 사업 속도를 더디게 하는 소소한 규제들을 이번에 추가로 손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 정책이 최근 재건축 이주 여파로 들썩이고 있는 서울 강남권 등의 전·월세 시장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에 대해 김재정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이번 대책은 사업 초기 절차를 간소화한 것이어서 직접적인 이주 수요가 증가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시장을 계속 지켜보고 필요하면 지자체와 협의해 재개발·재건축 조합 이주 시기를 조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