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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한강 "이제 빨리 방에 숨어 글쓰고 싶다"(종합)

김용운 기자I 2016.05.24 15:06:42

24일 맨부커상 수상 이후 첫 공식기자회견 가져
"수상 당시 현실감 없었다" 전혀 기대 안해
"번역은 작가의 톤·질감 중요 원작 충분히 번역해"
"신작 '흰'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소설"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2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카페콤마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이제 최대한 빨리 내방에 숨어 글을 쓰고 싶다.”

한국 작가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2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카페 콤마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과 함께 앞으로의 계획 등을 밝혔다. 한 작가는 2007년 발표한 ‘채식주의자’(창비)로 지난 16일 (현지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박물관에서 열린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공식만찬 및 시상식에서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영국의 데버러 스미스와 함께 상을 수상했다.

◇“수상 당시 현실감이 없었다”

한 작가는 1주일 전 시상식 당시의 상황에 대해 “시차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졸린 상태였다”며 “수상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현실감이 없는 상태에서 상을 받아 좋은 의미에서 무척 이상했다”고 설명했다.

한 작가는 맨부커상 수상 여부보다 신작 ‘흰’의 영국 출간과 관련해 영국 출판사 편집자와 직접 만나는 것을 더 기대했다고 한다. 맨부커상 후보에 오르면서 영국에 갈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 작가는 “이메일을 통해 의견을 나누다 보니 시차도 있고 해서 간단한 내용도 며칠이 걸렸다”며 “편집자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했는데 상을 받았고 많은 이들이 기뻐해주고 고맙다고 해서 그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1주일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영어로 ‘채식주의자’ 읽게 되어 기뻤다”

한 작가는 ‘채식주의자’의 수상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영국의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의 작업 과정에 대해 “‘소년이 온다’를 쓰고 있을 무렵 데버러가 ‘채식주의자’의 번역본을 보내줬다”며 “‘채식주의자’는 스페인어·폴란드어·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됐지만 내가 읽을 수 없는 언어였기에 영어로 번역한 ‘채식주의자’를 봤을 때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스미스가 번역 할 때 궁금한 것을 메모에 적어 보내주면 답하는 과정이 여러 번 있었다”며 “‘채식주의자’이후 데버러 스미스가 ‘소년이 온다’를 번역할 때는 5·18민주화운동의 사회·역사적 맥락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더 많은 메모가 오고 갔고 점점 더 긴밀하게 작업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번역 과정에서 번역자의 의역에 대해서는 “소설은 톤이 중요하고 목소리의 질감 같은 게 중요하다”며 “데버러는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가 악몽에 대해 독백하는 부문에서 내가 이입했던 감정과 그 톤을 정확하게 옮겼다. 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번역이었다”고 답했다. 이어 “‘소년의 온다’의 경우도 읽어봤을 때 원작에 불충실한 부분이 없었고 별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어려운 소설, 어려운 시는 없다”

한 작가는 ‘채식주의자’에 대해 “11년 전 완성했고 9년 전에 출간해 그 소설에서 많이 걸어나왔다”며 “채식주의자는 폭력과 아름다움이 이토록 뒤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고 껴안을 수 있는가를 물은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순수문학을 읽기 어려워하는 독자에 대해 “정말 어려운 소설과 시는 없다”며 문학을 어떤 대답 혹은 제안으로 받아들이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모든 소설의 장면들과 인물들의 움직임을 질문으로 생각하면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최근 한국문학의 위기론에 대해서는 “한국 작가들이 쓴 작품을 읽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문학에 커다란 애정과 빚이 있다”며 “희망이 있다면 방에서 조용히 묵묵하게 글을 쓰는 훌륭한 동려 선후배 작가가 너무나 많은데 상 받은 작품 외에도 이들의 작품을 독자가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신작 ‘흰’은 훼손되지 않은 존엄에 대한 소설”

신작 ‘흰’에 대해서는 “삶과 죽음을 다 떠올릴 수 있는 흰 것에 대한 산문을 쓰다가 어떤 한 페이지는 시가 되기도 하고, 허구의 사람이 돌아오면서 소설에 가까워졌고 결국 완전히 소설이 됐다”며 “우리에게는 무엇으로부터도 훼손되지 않은 존엄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지 않나. 깨져도 빛나는 인간의 투명함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이 담긴 ‘흰’은 한 작가가 지난 2014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머물면서 구상했던 작품. 한 작가는 “‘채식주의자’는 ‘우리가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는가 껴안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끝났고 여기서 다시 ‘우리가 이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시작해 인간의 밝고 존엄한 지점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흰’을 썼다”고 덧붙였다.

◇“수상 전후 달라진 건 없어”

맨부커상 수상으로 일약 국제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것에 대해 한 작가는 “수상 전후로 사는 것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며 “기자회견장에 올 때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바라건대 아무 일 없이 예전처럼 잘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오늘 이 자리가 끝나면 얼른 돌아가서 지금 쓰는 작업을 하고 싶다”며 “뭔가 드릴 말씀은 다 드린 것 같고 더 드릴 말씀은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글을 써가면서 책의 형태로 여러분께 드리고 싶다. 이제 최대한 빨리 내 방에 숨어서 글을 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1시간 20여분에 걸친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국내 소설가의 기자회견으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 ‘맨부커상’ 수상에 따른 한 작가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줬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2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카페콤마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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