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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하락폭만 보면 충격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 내부에서는 훨씬 큰 변화가 나타났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5.9% 급락했다. 엔비디아가 3% 넘게 떨어졌고 브로드컴과 AMD는 각각 4.8%, 5.6% 밀렸다. 올해 들어 60% 가까이 치솟았던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의 상승률도 57%로 낮아졌다.
AI 투자붐 흔들리나…“수익 실현 늦어지면 주가 부담”
방아쇠는 AI 업계 내부에서 나왔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가 최첨단 AI 시스템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재앙적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을 막기 위해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고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일론 머스크 xAI CEO가 이에 공감을 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AI 연구진도 최첨단 모델 개발에 일정한 제한을 두는 새로운 원칙을 공개했다.
월가가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안전 논쟁 자체보다 이것이 AI 투자 사이클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AI 개발 속도가 실제로 늦춰질 경우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등에 대한 막대한 투자의 회수 시점 역시 뒤로 밀릴 수 있다.
맷 말리 밀러타박 수석시장전략가는 “최근 상황이 약속됐던 AI 투자 수익의 실현 시점을 뒤로 미룬다면 투자자들의 열기가 식는 것은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향후 수년간 이어질 폭발적인 성장 기대를 상당 부분 선반영해온 만큼 수익 창출 시점이 지연되는 것만으로도 밸류에이션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AI 투자붐이 정점을 지났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반론도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저스틴 포스트와 니틴 반살은 “AI 도입에 대한 우려가 AI 밸류체인 전반의 투자심리에 부정적일 수 있다”면서도 “AI 용량에 대한 수요가 여러 해 동안 강하게 지속될 것이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HSBC의 맥스 케트너 역시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과 이에 따른 기술주 우려가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AI 기업들의 투자 부담이 줄면서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UBS 최고투자책임자(CIO)실의 울리케 호프만-부르카르디도 이번 움직임이 AI 투자를 중단하려는 것보다는 주요 AI 기업들이 수용할 수 있는 규제 틀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며 “AI 투자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0년물 5%·유가 100달러…AI만의 문제가 아니다
증시를 압박하는 것은 AI만이 아니다. 이날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장중 5%를 돌파했다. 2023년 이후 처음이다. 최근 고물가와 정부·기업의 대규모 차입, 미국의 장기 재정건전성 우려가 겹치면서 장기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제이크 달러하이드 롱보우애셋매니지먼트 CEO는 “10년물이 5%를 넘어선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며 “연준이 한 차례 이상의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년물 금리가 높은 수준에 머물 경우 주택담보대출과 기업 자금조달 비용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주식의 상대적인 투자 매력도 떨어진다.
국제유가도 부담이다. 브렌트유는 이날 장중 배럴당 110달러에 육박한 뒤 1% 오른 105.6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01달러를 웃돌았다. 중동의 에너지 공급 불안이 지속되면서 유가 상승이 물가를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장은 오는 16일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을 90% 이상 반영하고 있다. 다만 금리 인상이 적절한지를 놓고 월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스티브 잉글랜더 G10 외환리서치 글로벌 책임자는 “금리 인상은 잘못된 선택”이라며 관세로 인한 경제지표의 잡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위험관리 관점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금리 인상이 필요한지 판단하기 전에 데이터가 안정되도록 기다려야 한다”며 섣부른 인상 후 정책을 되돌릴 경우 연준의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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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부분은 이날 시장이 전면적인 위험회피로 흐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S&P500 구성 종목 가운데 상승 종목 수가 하락 종목보다 1.3배 많았다. AI 소프트웨어와의 경쟁 우려로 최근 약세를 보였던 서비스나우와 어도비, 워크데이는 오히려 4~7%대 급등했다.
AI 개발 속도조절론이 모든 기술기업에 동일한 악재가 아니라 그동안 막대한 AI 설비투자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아온 반도체와 하드웨어 기업을 중심으로 밸류에이션 재평가를 촉발했다는 의미다.
더구나 최근 주가 하락과 기업 실적 전망 개선이 겹치면서 S&P500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9배까지 내려왔다.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해방의 날’ 관세 발표 당시 이후 가장 낮다.
블룸버그의 타티아나 다리에 매크로 전략가는 “견조한 경제성장과 탄탄한 기업이익은 금리 상승과 밸류에이션 압축의 충격을 완충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한 토대 자체가 이제 의문을 받고 있는 만큼 긴축적인 금융여건이 주식에 미치는 충격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당장 AI 랠리가 끝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AI 투자수익에 대한 의구심과 5%에 이른 장기금리,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유가가 동시에 등장했다는 점은 이전과 다른 환경이다. 레이먼드제임스는 S&P500 등의 가격 모멘텀이 약화하고 채권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며 향후 1~3개월 주식시장 조정 위험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이번 주 시장의 첫 시험대는 오는 16일 연준의 금리 결정이다. 연준이 예상대로 금리를 올릴 경우 투자자들의 관심은 추가 인상 가능성과 고유가가 물가에 미칠 영향으로 이동할 전망이다. 여기에 AI 개발 속도조절론이 실제 기업들의 투자계획 변화로 이어지는지가 확인되면 올해 증시 상승을 이끌어온 AI 랠리의 지속 여부도 한층 선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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