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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공기업개혁]⑥평가제도 자체가 `D등급`

안승찬 기자I 2010.07.16 10:57:02

공정성·전문성 낮아.."못믿겠다, 억울하다, 뻔하다"
비계량지표 중심으로 학자들에게 `벼락치기` 평가 맡겨
"비용삭감 경쟁 등 공기업을 특정방향으로만 몰고 있다"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기관 합병 결정으로 지방 직원들의 이전비를 작년에 지급했는데, 인건비가 늘었다고 부분평가에서 0점을 받았어요. 법에 이전비를 보장하도록 되어 있어 우리로선 어쩔 수 없었거든요. 우리가 합병을 결정한 것도 아닌데, 이건 억울하죠."(A공기업 고위 임원)
 
"올해 낮은 등급을 받았는데 뭐 어쩔 수 없죠. 지난해에 생각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서 올해는 어차피 높은 등급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줄일 수 있는 부분이 뻔하거든요. 하지만 두고 보세요. 내년에는 분명히 점수가 좋아질테니."(B공기업 사장)
 
공기업개혁의 근간인 공기업평가제도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개혁의 목표인 경쟁과 효율, 자율과 책임이 살아 숨쉬는 공기업으로 면모를 일신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선 평가제도의 공정성과 신뢰성, 전문성 회복이 절실하다. 그러나 공기업 경영에 대한 형식적이고 주먹구구식 평가가 속출하면서 전문가들은 현 평가제도가 부작용을 유발한채 개혁의 동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평가결과 들쭉날쭉, 기업과 CEO평가 극명하게 엇갈려 
 

공공기관의 책임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공기업평가제도는 지난 1984년 처음 시작된 이래 올해로 26년째. 그동안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 다양한 방법이 모색됐지만 평가 결과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우선 기관장 평가와 기관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2008년 한국소비자원 박명희 원장과 한국청소년수련원 김동흔 원장은 해임건의에 해당하는 `미흡`(6단계중 5번째 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해당 기관은 B등급(6단계중 3번째 등급) 판정을 받았다.
 
2009년 평가에선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서영주 원장이 `미흡`판정을 받았지만 기관은 A등급(6단계중 2번째 등급)을 받았다. 에너지관리공단의 경우는 반대로 이태용 이사장은 '양호'(6단계중 3번째 등급)판정을 받은 반면 해당 기관은 D등급(6단계중 5번째 등급)에 그쳤다.
 
기업의 목표와 기관장의 목표가 대부분 일치하고 기업의 실적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결국 해당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몫이라는 점을 감안할때 기관과 기관장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점은 평가결과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평가결과도 1년만에 '들쭉날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008년 D등급을 받았던 한국석유관리원은 2009년 기관평가에선 1년만에 A등급으로 수직상승했다.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한국방송광고공사 등도 1년만에 D등급에서 B등급으로 올라갔다. 최하위 평가인 E등급을 받았던 영화진흥위원회는 C등급으로 올라갔다. 2008년 D등급 이하를 받은 17개 공공기관중 등급이 오르지 않은 기관은 단 4곳에 불과했다.
 
반면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은 2008년 A등급에서 2009년엔 1년만에 C등급으로,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관리공단, 한국청소년수련원 등 3곳은 B등급에서 D등급으로 뚝 떨어졌다. 성태윤 연세대교수는 "1년만에 평가결과가 2-3단계씩 변동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그 만큼 평가의 객관성이 약하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비계량지표 비중 높고 평가위원 전문성도 미흡
 
이같은 현상은 결국 평가지표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올고 있다. 전문가들과 평가를 받는 공기업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가장 대표적인 비판이 `비(非)계량 평가지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비계량지표의 비중은 공기업 평가가 처음 시작된 지난 80년대만해도 30%선에 불과했지만 점차 높아져 2000년대들어선 60%선까지 치솟았다. 평가대상 공기업이 80년대만해도 20여개에서 2000년대 들어선 100여개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계량화된 공통지표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지만 오히려 이에 역행했던 셈이다.
 
실제로 한국조세연구원이 2009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참여했던 평가위원 전원을 대상으로 비계량지표의 타당성을 조사한 결과, `매우 반대`라고 응답한 비율(7.8%)를 포함, 31.3%의 평가위원들이 부정적으로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를 담당했던 당사자들조차 비계량지표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따라 일단 비계량지표의 비중을 2008년 55%에서 2009년 50%, 올해는 45%까지 계속 축소한다는 방침이지만 평가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계량지표의 비중을 더욱 끌어올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평가지표 뿐 아니라 평가위원들의 전문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공기업평가를 담당하고 있는 평가위원의 대다수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현직 대학교수들이다. 지난 2008년의 경우 184명의 평가위원중 135명(73.3%)이 교수들이었고 2009년에도 절반수준을 넘어섰다.
 
여기에 평가위원들은 3-4시간의 워크숍이 평가를 위한 사전교육의 전부라는 게 평가위원들의 전언이다. 평가내용이 표피적인 분석에 그치고 해당 공기업의 특성과 속내를 속속들이 파악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 공기업 임원은 "매년 평가시즌만 되면 태스크포스를 꾸미고 합숙까지 단행하며 소위 '그럴듯한`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린다"며 "시험을 앞둔 학생들처럼 전직원들이 `벼락치기` 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평가에 참여한 바 있는 배준호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학자들이 중심이 돼 매년 겉핥기 형태로 진행되는 경영평가로는 공공기관이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토로했다.
 
김광수 강원대 교수는 " 공공기관은 그 규모와 인력 면에서 급성장하면서 많은 환경변화가 있었지만 경영평가는 그 평가수단인 지표에서부터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며 "상관성 있는 평가지표 개발이야말로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는 공공기관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일률적인 평가에만 치우치고 있어 기관간 비용 삭감 경쟁 등 특정방향으로만 치닫고 있다"며 "공적 서비스의 질 등 다양한 기준에 근거한 종합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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