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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롯데리아 소공점은 1979년 10월 25일 문을 열었다. 롯데리아가 소공동에 1호점을 낸 이유는 롯데그룹과 연관이 깊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일본에서 1948년 일본롯데그룹을 창업했다. 신 총괄회장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해 조국에서도 사업가로서의 능력을 펼치기 시작한다. 껌과 과자를 만들어 판매하던 롯데그룹이 국내에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소공동 일대에 이른바 ‘롯데타운’을 세우면서부터다.
롯데그룹은 1979년 3월, 일제강점기부터 서울을 대표한 호텔이었던 반도호텔 본사 건물을 철거한 터에 롯데호텔 서울을 신축해 운영에 들어간다. 아울러 롯데호텔 옆에 롯데백화점 본점을 지어 그해 12월 17일 영업을 시작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 중에 바로 롯데리아 소공점 개점도 포함되어 있었다.
롯데리아는 KFC,맥도날드, 버거킹 등 미국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기업에 맞서 1972년 일본에서 먼저 문을 열었다. 롯데그룹은 일본롯데리아와 합작해 1979년 롯데리아(현 롯데GRS)를 국내에 설립했고 롯데백화점 본점 개점에 맞춰 한국에서도 패스트푸드 전문점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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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리아가 문을 연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음식점에서 손님이 직접 음식을 가져다 먹는 것은 국내 정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은 국가에서 허가 해야만 갈 수 있는 시절이었다. 따라서 셀프서비스를 경험해본 사람들이 극히 적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롯데리아는 미국식 햄버거 패스트푸드의 운영시스템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덕분에 소공점 초기에는 매장에 붙여 놓은 ‘셀프 서비스’ 표시를 보고 이것을 메뉴로 착각해 “셀프 서비스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고객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롯데리아 소공점은 개점과 함께 서울 도심의 명소로 부상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햄버거에 대한 호기심 외에도 손님이 스스로 주문하고 음식을 가져다 먹는 모습 자체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롯데백화점을 찾는 손님들과 맞물려 롯데리아 소공점은 두 달 만에 월평균 3000만원 매출을 기록했다. 당시 롯데리아햄버거의 가격은 450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산술적으로 하루에 2200여개의 햄버거를 판 셈이다.
롯데리아 소공점은 국내 외식업계 최초로 정식 공고를 통해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 매장으로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롯데리아에 따르면 소공점을 열기 전 아르바이트생 모집에는 5000여명이 지원했다. 적성검사와 면접의 절차가 있었음에도 면접을 치르는 데만 꼬박 1주일이 소요했다. 롯데리아 소공점 아르바이트생 선발에는 외국어 테스트도 있었다. 소공동과 인근 명동 일대는 당대 서울 도심에서 외국인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인근에 호텔과 관공서, 은행과 증권사들의 본사가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장을 찾는 외국인들의 주문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회화 능력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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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에서 호텔과 백화점은 이미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탓에 롯데호텔 서울과 롯데백화점 본점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롯데리아 소공점은 롯데그룹에게 각별한 매장일 수 밖에 없다. 비록 호텔이나 백화점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매장이지만 햄버거 기반의 패스트푸드와 손님 스스로 음식을 가져다 먹는 셀프서비스를 국내에 처음 도입해 이후 한국인들의 생활문화를 바꾼 시발점이 바로 롯데리아 소공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어서다.
현재 롯데리아 소공점은 1979년 10월 개점 당시 자리에서 운영하고 있지 않다. 롯데백화점 본점의 여러 차례 리모델링 과정에서 현재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으로 나가는 로비의 매장을 소공점으로 지정했다. 롯데백화점 본점 규모보다 롯데리아 소공점의 매장 크기는 아담한 편이다. 좌석은 지하에 별도로 마련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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