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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야르훈데르트 할레(Jahrhundert halle) 공연장. 이곳에서는 가수 이미자의 파독(派獨) 근로자 50주년 기념공연 ‘이미자의 구텐탁, 동백아가씨’가 열렸다. 외화벌이를 위해 우리나라를 떠났다가 현지에 정착한 광부와 간호사, 그 가족들의 노고를 되새기기 위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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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 타국에서 헌신한 이들에게 잠시나마 고향을 선물했던 이 빵은 바로 SPC삼립(005610)(구 삼립식품)이 생산하는 ‘크림빵’이다. 당시 회사 측은 크림빵이 1964년 출시돼 우리나라 근대화와 궤를 같이 해온 만큼 파독 근로자들에게 작은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2400개의 크림빵을 비행기에 실어 보냈다.
◇국내 최초 자동화 설비 갖추고 비닐 포장 빵 출시
파독 근로자들뿐만이 아니다. 크림빵은 1960~1970년대 경제성장기 구로공단 야근 노동자들의 대표 간식으로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SPC삼립 크림빵은 올해로 출시 55년을 맞았다. 국내 최초로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비닐 포장으로 출시된 빵 제품으로, 빵을 산업의 반열에 올려 전 국민의 먹을거리로 바꾼 주인공이다.
SPC삼립의 모기업 삼립식품의 창립자 초당 허창성(1921~2003) 명예회장은 지난 1945년 ‘상미당’이라는 제과 공장을 차렸다. 이후 삼립산업제과공사를 설립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빵보다 주로 과자를 만들어 내는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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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시 당시 10원짜리 크림빵의 인기는 대단했다. SPC삼립 대방동 공장은 크림빵을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등 성황을 이뤘다. 3개의 크림빵 라인을 24시간 풀가동해도 공급이 달렸다. 크림빵은 한때 SPC삼립 전체 공급량의 34%를 차지할 정도로 판매가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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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설비를 확충하고 인력까지 증원했지만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에 당시 최신 제빵공장인 가리봉동 공장 건설에 착수해 1968년 준공했다. 크림빵의 성공을 통해 제빵 전문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한 것이다.
1960~1970년대 전설적인 히트 상품이었던 크림빵도 한때 인기가 주춤해지며 ‘크림맛빵’으로 이름까지 바꿨으나 반등에 성공하지 못해 생산이 중단된 바 있다.
이런 크림빵이 다시 세상으로 나온 건 아버지 허 명예회장의 뜻을 받은 허영인 회장에 의해서다.
허 명예회장은 세상을 뜨기 전 병상에서 허 회장에게 “옛날 그대로의 크림빵을 다시 만들어 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창업주의 마지막 꿈이었던 셈이다.
허 회장은 2003년 자동화 생산설비와 수차례에 걸친 제품 테스트를 통해 1960년대 수작업으로 만든 크림빵의 맛을 그대로 재현했다. 맛에 더해 크기와 모양, 패키지 디자인까지 옛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특히 당시는 ‘추억’을 키워드로 삼는 비즈니스가 분야를 막론하고 확산하고 있었다. 영화, TV 드라마, 콘서트 등 대중문화에서 식품, 게임, 스포츠, 축제에 이르기까지 그 조짐이 뚜렷했다. 실제로 추억을 강조하는 마케팅 기법은 ‘불황을 뚫는 묘책’으로 통할 정도였다.
◇판매된 크림빵 19억개 일렬로 연결하면 지구 5바퀴 반
여러 가지 흐름이 맞아떨어지면서 크림빵은 2004년 상반기에만 1400만개가 팔려 하루 평균 8만개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매출액으로 환산하면 약 60억 원에 달해 동종 업계 단일품목 최고 판매기록을 세웠다.
현재까지 판매된 크림빵은 약 19억 개다. 이를 일렬로 연결하면 백두산을 4만1454회 왕복해 오르내릴 수 있고 지구를 5바퀴 반 돌 수 있는 양이다.
출시 당시 10원이던 빵이 지금은 1000원일 정도로 시간이 지났지만, 크림빵은 지금까지도 하루 평균 판매량이 약 15만개에 이르는 SPC삼립의 대표 제품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SPC삼립 관계자는 “쫄깃하고 부드러운 원형 빵 사이에 달콤한 크림이 어우러진 크림빵 출시는 당시 식품업계에 혁명적인 사건이었다”며 “지금도 시대를 초월한 맛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국민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