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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장 우럭 90% 떼죽음…차라리 단체폐업 시켜달라”

김미영 기자I 2024.09.11 05:01:00

태안군 양식장 어민들, 단체로 문 닫을 판
“이상기후에 수십억 피해, 빚만 늘어…폐업지원해달라”
성일종 의원, 관련 법안 준비하기도
정부, 내년 양식업 예산 늘렸지만…피해예방 뾰족한 수 없어

[태안(충남)=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살다살다 이런 적은 처음이여. 내년엔 진짜로 양식 안할 거여.”

충청남도 태안군 앞바다에서 25년째 양식업으로 생계를 이어온 김진호(가명) 씨는 “이제 진짜 더는 못하겠다”고 장탄식을 내뱉었다. 2만㎡ 규모의 양식장을 운영 중인 김씨는 10일 “오늘도 죽은 우럭 치어들을 건져냈다. 80~90%가 죽었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상대적으로 양식장 규모가 작아 올해 5억원 정도 피해를 입었다쳐도 더 크게 운영해온 사람들은 피해가 수십억 원에 달한다”고 토로했다.

충남 태안군에서 양식업을 하는 김진호씨가 촬영한 어류 폐사 사진. 김씨는 “이런 사진이 수십 장 넘게 있다. 그만큼 올해 여름 어류 폐사 피해가 극심했다”고 토로했다.
태안군 양식어가들은 앞으로도 고수온에 따른 극심한 피해가 계속되리란 비관적 전망에 ‘공동폐업’을 추진하고 있다. 단체로 양식업 면허증을 반납하고 문을 닫겠단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선례 없는 일이다.

안면도해산어양식협회에 속한 양식어민들은 지난달 말 태안군청과 해양수산부, 지역구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등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공동폐업 뜻을 밝혔다. 회의에 참석한 이정수(가명) 씨는 “이 동네에서 양식업 하는 사람들은 다 망했다고 보면 된다”며 “나는 보험에 들었어도 30~40% 밖에 보상받지 못하는데 어차피 보전율이 낮으니 보험에 들지 않았던 어민들은 피해가 막심하다”고 했다. 실제로 태안군을 포함한 천수만 가두리양식장의 양식수산물재해보험 가입율은 올해 기준 34%밖에 안되는 상황이다. 이씨는 “정부도 피해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너무 부족하다”며 “해마다 이런 피해를 입고 빚만 불리느니 다같이 면허증을 반납하겠단 분위기”라고 했다.

이들은 정부에 공동폐업 뜻을 전하며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손쓸 수 없는 자연재해로 생업을 중단하게 된 만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폐업 보상엔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해수부에서 어민들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성일종 의원실에선 고수온 피해로 폐업하는 양식 어가에 폐업지원금을 줄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의원실 관계자는 “기후변화에 따른 양식 어류 폐사는 향후에도 줄어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양식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양식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어업인들을 대상으로 폐업지원금을 지원하는 등의 근거를 마련해 어업인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려 한다”고 했다.

정부는 양식 어민들의 피해에 다른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먼저는 올해 고수온 피해를 입은 양식어가 중 피해조사와 지자체 복구계획 수립이 끝난 충남(태안·보령·서산), 경남(통영·거제·남해), 전남(여수) 등 352곳에 재난지원금 139억원을 추석 전 서둘러 지급키로 했다.

내년도 예산안엔 양식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을 늘렸다. △스마트 양식 표준화 모델 개발 △품종별 스마트·자동화 설비 지원 △기후변화에 대응한 시설을 지원하는 친환경 양식어업 육성 등 양식업 관련 예산을 올해 369억원에서 내년 488억원으로 늘릴 방침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상기후에 대응하고 양식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돕기 위해 예산을 늘렸다”며 “보다 중장기적으로 고수온 변화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단 문제의식이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어민들은 “당장 내년, 내후년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씨는 “끓어오르는 바다가 야속하다기보단 내가 왜 가업을 이어서 양식을 했을까 한탄이 든다”며 “이렇게 하나 둘 양식어민들이 떠나면 결국은 식탁 물가도 오를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민이 우리의 어려움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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