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유의 웹툰파헤치기]김숭늉 작가 "소수가 두렵지 않은 사회됐으면"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된 웹툰 ‘유쾌한 왕따’는 한 가지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작품이다. 작품명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단순한 학원물, 코믹물도 아니다. 판타지와 스릴러, 그리고 사회 풍자까지 더한 복잡한 작품이다. 관련된 스토리도 심오하다. 제한된 환경에서 ‘왕따’(약자)가 어떻게 변해갈 수 있고 이분법적인 ‘선악’의 구분이 바람직한 일인지 생각하게 하는 웹툰이다. ‘다수의 의견이 모두 옳은걸까’라는 사회적 의문도 이 작품에서는 심도 있게 다뤄진다. 유쾌한 왕따를 그린 김숭늉 작가를 만나 작품 배경과 연재 의도에 대해 물어봤다.

레진코믹스에서 ‘유쾌한 왕따’를 그린 김숭늉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레진엔터테인먼트)

◇단순한 왕따 이야기인줄 알았지만 내용이 매우 심오합니다. ‘유쾌한 왕따’를 구상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김숭늉(이하 김): 처음부터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최초의 기획은 4컷 만화 형식의 가벼우면서 우울한 분위기의 개그물이었어요. 평소 좋아하던 작품인 ‘자학의 시’ 같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획에 살이 붙어가면서 ‘웃어야할지’는 빠져버리고 우울하고 무거운 지금의 이야기가 돼 버렸네요. 애초에 개그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무너져 내린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생존하는 내용과 이후 바깥 생활과의 내용은 각각 1·2부 격인 것 같습니다. 이같이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환경을 구분해 순차적으로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김: 1부를 마무리해갈 즈음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1부는 작은 집단이 밀폐된 공간에서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보니 집단과 개인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았어요. 공간과 집단을 더 크게 설정해서 주제를 더 강조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뉴스에서 아파트 주민들의 갑질이나 임대아파트 주민들과의 불화를 다룬 내용이 나오더군요. 아파트가 주민들만의 배타적인 성처럼 느껴졌고 이걸 소재로 1부에 못 다한 이야기를 풀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바깥 세상에서 가해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 결국 현실에서 ‘뺏기는 사람’들이 어떤 제한된 환경이 만들어질 경우 급작스럽게 ‘뺏는 존재’로 변해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현실의 어떤 점을 그려내고 싶었는지요.

김:왕따였던 주인공 ‘동현’이 처음으로 집단 안에서 인정받고 소속감을 느끼게 되고 그 집단이 향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 집단이 ‘뺏는 존재’라 할지라도 동현에게는 그 집단만이 자신을 품어주는 유일한 곳이기에 선악의 구분이나 가치판단을 할 여유도 없는 것이지요. 굳이 집어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현실에서도 이와 유사한 행태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쾌한 왕따’를 통해 작가님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최종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제목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김:최종적인 메시지라고 말해버리면 너무 그 메시지에만 초점을 맞춰서 작품을 보실 것 같습니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전체’와 ‘개인’에 대한 이야기 정도라고만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목은 부끄럽지만 별 뜻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최초의 기획은 우울한 개그물이었고 그때 붙인 제목이 ‘유쾌한 왕따’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기획기간 내내 ‘유쾌한 왕따’라고 부르다보니 딱히 제목을 바꿀 생각이 들질 않았어요. 독자 분들중에 제목에서 의미를 유추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럴 때마다 죄송스럽고 부끄럽습니다.(웃음)

‘유쾌한 왕따’의 주인공 ‘동현’. 언제나 학교 친구들에게 맞고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로 살고 있다. (사진=레진엔터테인먼트)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본성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 설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냈는지 궁금하네요. 모티브를 얻은 영화, 소설 등의 콘텐츠가 있는지.

김:영화 ‘미스트’를 20번은 본 것 같네요. 원래도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했지만 ‘유쾌한 왕따’를 그리는 내내 ‘미스트’같은 분위기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갇힌 공간에서 사람들이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 모습이 참고할 점들이 많았습니다.

◇‘유쾌한 왕따’에서는 ‘거대한 달’이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품 속에서 누군가는 달을 보면 미친다고 하고, 누군가는 달 때문에 살 수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김:‘달이 커져서(지구와 가까워져서) 재난이 발생했다’, ‘달은 사람들의 욕망이나 공포 같은 내면 깊숙한 곳을 상징하는 존재다’, ‘결국 재난은 인간의 욕망이나 공포가 만들어낸 것이다’ 등이라고 말을 하긴 하는데 말할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웃음) 솔직히 말해서 2부에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장치로 (달을) 만들었는데 이야기를 진행하다보니 딱히 그런 게 없어도 얼마든지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이 가능한 것 같아서 점점 중요도가 떨어져버린 소재입니다.

◇‘유쾌한 왕따’에서는 ‘다수의 논리가 언제나 옳은걸까’라는 우리의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던져줍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이 숙제에 대해 작가님의 생각은.

김:‘다수의 논리가 옳아서 사람들이 따르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는 논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수인 게 중요한 것이다’라고 ‘유쾌한 왕따’에 그렸습니다. 물론 만화니까 재미를 위해 극단적으로 내지른 면이 있지만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편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심오한 세계와 철학을 담은 ‘유쾌한 왕따’가 완결됐는데 구상하고 있는 차기작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픈 말이 있다면요

김:차기작은 ‘사람 냄새’라는 좀비물입니다. 제목과 같이 끈적끈적하고 시큼퀘퀘한 사람의 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독자님들! 항상 부족한 작품 봐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돈 벌어서 올해 결혼도 했어요.(웃음) 차기작도 많이 봐주세요! 사랑합니다!!

김숭늉 작가가 <이데일리> 독자들을 위해 ‘유쾌한 왕따’ 속 캐릭터인 ‘진국이’의 그림과 함께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레진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