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울산경찰청 동부경찰서에서 만난 지경은(42) 경제범죄수사1팀장(경감)과 박종문(37) 수사관(경장)은 최근 전세사기범 일당을 수사했던 때를 이렇게 떠올렸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메시지로 대화하고 대포폰을 쓰는 등 종적 감추기에 능한 사기범을 잡기 위해 무엇보다 빠른 대응에 주력했다. 이들은 “신청한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 ‘하루가 지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팀원들에게 바로 연락해서 곧장 보완하는 등 서둘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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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경제적 살인’으로 불리는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지난 7월 ‘전세사기 수사전담본부’를 띄우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선 가운데, 지 팀장과 박 수사관은 최근 전세자금 대출 15억원을 가로챈 일당 28명을 무더기로 검거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 사건은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 팀장은 당시 전세사기 피해를 봤다며 고소장을 낸 20대 초반 한 여대생을 상담하다 이상한 낌새를 챘다. 수사를 해보니 이 학생은 SNS를 통해 접근한 부동산 브로커로부터 “1억원 전세대출을 받아주면 5000만원 불려주겠다”는 얘기에 속아넘어가 대출을 받았고 허위 전세계약서도 작성했지만, 정작 대출받은 전세자금은 중간에서 브로커가 가로채 도망갔다. 지 팀장은 “법리 검토 끝에 이 학생을 피해자 아닌 전세대출사기 공범으로 수사를 시작했다”며 “브로커의 연락처·페이스북으로 인적사항을 특정해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수사하면서 여러 건의 전세사기를 추가로 인지했다”고 설명했다.
지 팀장은 이 사건을 ‘명의를 도용해 바지임대인을 내세운 유형’으로 규정했다. 그는 “임차인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수수료를 받을 목적으로 허위 전세계약서를 작성해 금융기관의 청년층 맞춤형 대출금을 편취한 게 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최근 명의를 도용해 바지임대인을 내세운 전세사기가 횡행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임대·임차인 브로커들은 급전이 필요한 20대 초년생과 명의를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으려는 집주인을 SNS로 모집했다”면서 “이들은 비교적 심사가 허술한 인터넷은행, 관행적으로 전세계약서를 체결해주는 공인중개사, 이전 세입자 확인 없이 확정일자를 내준 동주민센터 등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서울·인천도 당일치기 이동…인터넷은행 등 책임있는 자세도”
이들은 이 사건의 브로커를 잡기 위해 서울·인천 등 전국 방방곡곡을 뒤졌다. 지 팀장은 “서울, 인천에서 대포폰 발신자 추적이 뜨면 곧장 울산에서 차를 몰고 갔다”며 “결국 부평 문화의 거리에서 대기하다가 임차인 브로커를 끝내 잡으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쥐게 됐다”고 말했다.
박 수사관의 ‘눈썰미’도 사건 해결에 한몫했다고 지 팀장은 공을 돌렸다. 그는 “(박 수사관이) 임차인 브로커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인스타그램 사진에서 비늘 문신이 있다는 것을 포착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다가 체포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전세사기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다각도의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지 팀장은 “보증보험으로 피해를 본 전세대출금을 막아주지만 이 돈은 국민 세금에서 나오는 만큼 은행들은 대출에 엄격한 심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공인중개사가 현장에서 전세계약서를 작성하러 온 사람들을 보면 충분히 의심스러운 정황을 알 수 있고, 이러한 피해도 막을 수 있다”며 “동주민센터에선 세입자부터 꼼꼼하게 확인하고 확정일자를 해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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