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초대총리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가 1930년대 3년여의 수감 기간 중 13살 외동딸 인디라 간디를 위해 교육용으로 쓰기 시작한 196편의 편지를 모은 책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기네스 기록 편지로 알려져있다.
통상 서구적 관점이 아닌 제3자적 입장에서 동서양의 여러 사상, 문화와 역사를 관조해 보려했고, 47년 독립 후 이어진 인도의 비동맹과 민주 사회주의 노선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1930년대, 세계가 미증유(未曾有)의 세계대공황으로 휘청거리고 있을 때 소련판 계획경제가 보여주었던 단기간의 경제 성과는 네루와 인도 독립운동의 본산 인도국민회의당(Indian National Congress·INC) 지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국의 식민지배가 가져다준 외자 및 대외교역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은 독립 인도에 민주주의 정치와 사회주의 경제를 혼합한 네루식 민주 사회주의 자급정책으로 연결됐다.
산업화에 필요한 철강, 기계, 물, 전기, 광업, 인프라, 금융 심지어는 호텔(관광) 등 거의 모든 산업 및 주요 서비스 부문을 공기업이 지배했다. 도입된 각종 교육, 의료, 보건 기반은 저소득층 기저생활 강화와 고른 산업기반을 갖추게 한 출발점이다.
헌법에 카스트(Caste) 차별 폐지를 명문화하고 전체 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중하위 Caste계층에 공직, 공기관과 대학 진입 시 50%에 달하는 별도 쿼터(Quota)를 배정하는 등 각종 지원제도를 도입, 뿌리 깊은 3000년 카스트 기반을 뿌리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효율적인 중앙계획 시스템과 규율되지 못한 관료제가 민간부분을 질식시켰고, 80년대 초반까지 연평균 3.5%란 완만한 성장률과 1인당 GDP 1.4% 성장이란 ‘힌두성장률’로 극심한 빈부격차를 완화, 해소할 체력을 비축할 수 없었다.
산업의 진퇴는 물론 특정상품의 생산량도 정부관료들의 손끝과 정치권과의 관계로 좌지우지되고, 기업인들은 국내외 거래처나 산업 현장이 아니라 정부나 정치권 문턱을 드나들어야 했다. 정경유착과 부패의 뿌리 깊은 연결고리는 고착, 강화됐다. 세계 3대 상인이라는 인도 상인과 인도 경제의 국제경쟁력과 자생력 역시 정체 내지 후퇴되는 후유증을 남겼다.
이렇게 인도가 1947년 독립 후 IMF 구제금융 조건부로 대외에 문호를 개방한 1991년까지 기간을 규제왕국(License Raj·Raj는 힌디어로 왕, 지배를 뜻한다) 또는 Industry Raj라고 부른다. License가 왕, Raj인 시절이었다.
그러나 외부에 문을 닫아 걸은 이 40년 동안 외부세계는 급변했다. 성장과 효율, 기술발전 속도면에서 인류사 최적시스템이라는 자본주의 기반의 미국, 일본과 서구는 급속한 기술발전과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웃 공산국가인 중국은 인도보다 12년 앞선 1979년 등소평식 개방, 개혁정책을 도입,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인도 경제의 버팀목이자 롤모델이었던 소련은 1989년 붕괴되었다.
인도의 지난 30년은 독립 후 50여년 온실 내에 머물렀던 인도 기업, 인도 상인들이 온실 밖 새로운 강자와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그 체력과 경쟁력을 키워가는 기간이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네루가 구축한 민주 사회주의 시스템 기반 위에 1979년의 중국보다 앞서 1970년대에 인도가 개방, 개혁정책으로 물길을 돌릴 수 있었다면 현재의 인도는 아마 ‘G2’(주요 2개국)가 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서울대 법학과 △연세대경영대학원 경제학과 △브랜다이스대 국제무역발전론 △코트라 투자유치팀 △통상전략팀 △해외진출협력처 해외진출컨설팅팀장 △산업자원협력처 정부조달팀장 △방콕무역관장 △통상지원실 FTA지원팀장 △해외시장정보실 빅데이터팀장 △뉴델리무역관 △아메다바드무역관 △암다바드무역관장 △서남아 지역본부장 겸 뉴델리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