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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AI 규제 법안은 대체로 산업 진흥보다는 규제에 초점을 잡고 있다. 안면 인식과 같은 실시간 생체 인식 시스템 등 ‘허용할 수 없는’(unacceptable) 수준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기술은 금지되는 게 핵심이다. 테러범 추적이나 국가 안보 같은 꼭 필요한 경우에는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하도록 예외조항을 두긴 했지만 지나치게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다 보니 기업들의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반면 미국은 자율규제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광범위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만들기보다는 선도적인 AI 기업들의 자발적인 관리 약속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자체적으로 감시하되 정부가 사후적으로 점검하면서 기업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했다. AI가 가지는 긍정적인 잠재성은 극대화하면서도 국가안보, 허위정보 생산 등 위험성은 최소화한 조치다. 표적화된 접근법으로, EU의 경성규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연성규범으로 볼 수 있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각국마다 상이한 AI 규제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을 별도로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미국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빌 와이먼(Bill Whyman) 비상임 선임고문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과 EU의 AI 규제에 대한 접근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장벽이 생겨 AI 서비스 및 기술 무역이 저해되고 다국적 기업들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하게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EU와 미국은 규제 차이로 인해 무역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EU는 이미 데이터 프라이버시, 경쟁 및 콘텐츠 조정과 관련된 광범위한 법률을 제정했고 주로 미국의 빅테크를 겨냥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 2월 챗봇 바드를 출시해 6월부터 유럽에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EU 데이터 규제당국이 개인정보보호문제를 제기하면서 출시가 연기되기도 했다. 와이먼 고문은 “EU 및 기타 국가와의 무역 갈등이 발생하여 글로벌 규제 환경이 파편화되고 있다”며 “상이한 규제 접근 방식은 기업들이 새로운 AI 서비스를 수출하는 데 방해가 되고, 무역마찰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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