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다" 아파트 외벽줄 자른 살인마[그해 오늘]

전재욱 기자I 2022.12.15 00:03:00

경남 양산시 아파트서 외벽 작업자 줄끊어져 추락사
아파트 주민이 "시끄럽다"며 줄 절단해서 벌어진 참사
심신미약 주장에도 1심 무기징역…"영문도 모르고 생 마감"
항소심서 징역 35년으로 감형…"알코올중독에 가족도 외면"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7년 6월8일 오전 8시께 경남 양산시 한 아파트 외벽에서 일하던 작업자가 추락사했다. 몸을 맡긴 외줄이 아파트 11층 높이에서 끊기면서 변을 당했다. 함께 일하던 다른 작업자도 줄이 끊길 뻔한 아찔한 상황에서 목숨을 구했다. 누군가 두 사람의 줄을 절단해서 발생한 참극이었다. 범인은 이 아파트 15층에 살던 서모씨.

경남 양산시 한 아파트에서 외벽 작업자 밧줄을 잘라 살해한 서모씨(마스크 착용)가 2017년 6월15일 현장 검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씨가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수면을 방해받은 까닭이었다.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서씨는 당일 일을 얻지 못해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잠을 잤다. 그런데 밖에서 작업자가 틀어놓은 음악 소리에 잠에서 깬 것이다. 높은 곳에서 일하는 작업자는 긴장을 풀기 위해 음악을 듣곤 한다. 안전상 이어폰을 쓰기는 어렵고, 소리가 너무 크면 위험해서 아주 시끄럽게 틀지는 않는 게 일반적이다.

서씨가 작업자들에게 음악을 끄라고 했다. 작업자 한 명이 이 말을 듣지 못해 음악을 못 껐다. 화가 난 서씨가 공업용 커터칼을 들고서 옥상에 올라갔다. 옥상에는 밧줄 네 개가 걸려 있었다. 아무 밧줄을 골라서 자르던 중에 다른 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자르던 밧줄을 두고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쪽 밧줄을 잘랐다. 이로써 작업자 한 명이 추락해 현장에서 숨을 거뒀고, 다른 한 명은 밧줄이 덜 잘려 목숨을 건졌다.

집으로 돌아온 서씨는 태연하게 행동했다. 가족 앞에서 통화하면서 범행을 저지른 사실을 감추려고 했다. 공업용 커터칼은 냉장고에 감췄다. 용의자로 지목되자 옥상에 올라간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발뺌했다. 수사기관은 옥상에서 발견된 슬리퍼 자국이 서씨의 집에서 발견된 슬리퍼 바닥과 일치하는 점을 확인하고, 범행에 쓰인 커터칼도 찾아냈다. 그제야 서씨는 범행을 인정했다.

서씨는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서씨는 이미 폭력 전과가 열 차례 있었다. 개중에 두 차례는 실형을 선고받을 만큼 죄질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범죄는 보복 협박죄로 실형 3년을 복역한 지 2년이 안 돼 저지른 것이었다. 형법과 특별법은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고 3년 안에 금고 이상 범죄를 저지르면 누범으로 보고 가중처벌한다.

2017년 6월15일 작업자가 밧줄이 잘려 외벽에서 추락사한 사건이 발생한 경남 양산의 한 아파트 현장에 밧줄과 죽음을 애도하는 하얀 국화가 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법정에서 서씨는 정신장애와 알코올 중독으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조울증과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범행 과정에서 정확하게 음악 소리가 나는 쪽을 식별하고, 이후에 알리바이를 만든 과정을 보면 심신미약 상태로까지 보기는 어려웠다.

울산지법은 2017년 12월15일 서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위치추적장치 착용 20년을 명령했다. 법원은 “망인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서 가족 6명을 부양하고자 아침부터 위험을 무릅쓰고 일했다”며 “이후 영문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방비로 아파트 11층에서 추락해 생을 마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고 없이 배우자이자 아버지를 잃은 가족은 충격과 슬픔 속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항소심 법원은 “무기징역은 너무 무겁다”며 징역 35년으로 감형했다. 법원은 “피고인은 가정환경이 불우해 폭력적인 성향을 가졌고, 알코올 중독으로 일자리를 갖지 못해 가족에게서 외면받았다”며 “범행 당시 조증과 알코올 장애를 겪어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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