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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 운동에도…이란, ‘반정부 시위 참여’ 레슬링 선수 처형 [그해 오늘]

이재은 기자I 2024.09.12 00:00:00

재판서 거짓 자백 강요받았다 호소했지만
사형 선고…동생 2명에게는 중형 내려져
IOC “처형 막지 못해…매우 유감스럽다”
이란, 2022년 ‘히잡시위’ 때는 유혈 진압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2020년 9월 12일(현지시간) 이란의 유명 레슬링 선수였던 나비드 아프카리(당시 27세)가 살인 혐의로 처형당했다. 2018년 8월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던 중 공기업 경비원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결과였다.

하지만 통상 살인 사건과는 달리 이란 시민들은 아프카리가 누명을 쓴 것이라며 정부의 보복성 판결을 비판하고 구명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죽음에 수많은 이들이 분노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란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민들이 2020년 9월 12일(현지시간) 유명 레슬링 선수 나비드 아프카리의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영국 런던 주재 이란 대사관 앞에서 하산 로하니 당시 이란 대통령 사진에 ‘X’ 자를 그리고 아프카리의 얼굴이 담긴 피켓을 들며 규탄하고 있다. (사진=AFP)
◇반정부 시위 참여 레슬링 선수 체포…살인 혐의 적용

이란 사법부가 아프카리를 잡아들인 날은 2018년 9월 12일이었다. 같은 해 8월 2일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아프카리가 동생이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경비원을 쫓아가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사법부는 구체적인 범행 동기도 공개하지 않은 채 아프카리의 형제 2명도 체포했고 이들이 반정부 시위에서 경찰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히고 약탈에 가담했다고 발표했다.

2018년 이란에서는 정부의 경제 정책과 엄격한 율법 등에 반발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으며 아프카리는 부패와 빈곤, 여성에 대한 차별 등을 걱정하며 행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에 넘겨진 아프카리는 법정에서 고문 등으로 거짓 자백을 강요받았다며 무죄를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변호인 또한 범행 장면이 담긴 영상은 없었으며 재판 과정에서 제시된 증거는 범행 발생 1시간 전의 현장에 불과하다고 강조했지만 사법부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사법부는 신체적, 심리적 고문을 당했다는 아프카리의 항의를 부인하며 자백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결국 아프카리는 2020년 8월 29일 사형을 선고받았고 함께 재판에 넘겨진 동생 2명에게는 각각 징역 33년과 15년, 74대의 태형이 내려졌다.

◇유족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시민들은 SNS서 구명운동

이에 아프카리의 가족들은 면회 시간에 몰래 녹음한 음성파일을 바탕으로 이란 당국이 심하게 고문해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이란 시민들은 아프카리가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다가 누명을 썼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비드를 살려달라’는 해시태그를 넣은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프카리의 석방을 골자로 한 이 캠페인에는 국제 앰네스티와 같은 인권 단체와 이란 밖에서 활동하는 레슬링 선수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같은 해 9월 3일 SNS에 “이란의 지도자들에게. 이 젊은이의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목숨을 살려준다면 대단히 고맙겠소”라고 적었으며 미국 국무부도 성명을 내고 “2018년 평화 시위에 참여한 아프카리는 고문을 받은 끝에 허위로 자백했다”며 “미국은 아프카리에게 사형을 선고한 이란 정권에 대한 전 세계적 분노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 사법부는 선고 13일 만에 아프카리에 대한 형을 집행했고 별도의 자료를 낸 뒤 처형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가족에게는 마지막 면회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아프카리가 처형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매우 충격적”이라며 “국제적으로 구명 운동을 벌였으나 처형을 막지 못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표현했다. 아프카리의 모친은 아들이 자백하도록 고문을 받았다고 재차 강조하며 “제 자녀들은 스스로를 변호할 수도 없었다”고 호소했다.

아프카리를 향한 연대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이어졌지만 이란 정부는 반정부 시위대를 탄압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2022년 9월에는 테헤란 도심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당시 22세)가 지도 순찰대에 체포됐다가 숨졌으며 이 사건을 보도한 기자 수십여 명이 구금되기도 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조사단에 따르면 2022년 ‘히잡 시위’ 당시 이란 정부의 유혈 진압으로 인해 551명이 숨지고 1500여명 이상이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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