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은 29일 복수의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지난 23일 45분 간 진행된 전화통화에 대해 “당초 일본 정부가 예상했던 ‘무역 압박’ 대신 트럼프 대통령의 장황한 자기 자랑과 신형 전투기 이야기로 채워졌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
무역 압박 대신 자찬 늘어놔…日관료 “당혹·초현실적”
두 지도자 간의 통화는 당초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급작스럽게 이뤄진 것이었다. 이시바 총리와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당연히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통화 내용은 그들의 기대를 한참 벗어난 것이었고, 대화 흐름도 일관성이 없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F-47 전투기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내가 47대 대통령이라서 좋은 숫자”라며 동의를 요구하는가 하면, 자신의 업적을 길게 설명한 뒤 “내가 이만큼 대단하다”고 강조하는 데 상당 시간을 썼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무역이나 경제 현안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이 이뤄낸 중동 무기 판매를 자랑하더니 갑자기 카타르로부터 받은 보잉 747기와 미국 F-47 전투기를 자랑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업적에 대한 칭찬을 요구했다”며 “너무나도 초현실적이고 당황스러운 분위기였다”고 회상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통화 직전까지 미국산 농산물 추가 구매 압박이나 대일 관세 완화를 둘러싼 ‘거친 협상’을 우려했다. 하지만 실제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누워서 얘기하는 것 같았다. 어조가 너무 편안해서 (오히려) 일본 측이 당황했다”고 말했다.
전화 통화 후 엿새가 지난 이날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은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 축소를 위해 미국산 무기 구매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발언은 다양한 추측을 낳았다.
기자 Pick
예를 들어 미국이 지금까지 일본에 판매하려 하지 않았던 F-55 전투기까지 언급하며 “미국엔 이런 멋진 전투기가 있다. 미국의 전투기는 세계 최고”라며 “이시바 총리도 관심이 있다면 보여주겠다. 일본에는 최고의 기종을 제공(판매)하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영국·이탈리아와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을 추진 중이어서 당시 이시바 총리는 “평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믿는다”며 원론적 답변만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나 이시바 총리 개인에 대한 진지한 관심보다는 자신에 대한 인정을 더 받고 싶어하는 듯한 횡설수설 독백으로 일관했다”고 평가했다.
“아베처럼 자랑 들어주고 칭찬해줄 사람 필요했던 듯”
두 정상 간 통화는 다음달 중순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계기 양자회담 개최 합의로 마무리됐으나, 일본 정부는 아직도 트럼프 대통령이 왜 전화를 걸었는지 이유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 내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동 순방과 관련해 언론과 정치권의 비판이 거세지자,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찬사해줄 상대를 찾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얘기를 (잘) 들어주는 이시바 총리에게 전화해보자’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고 추정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일본 주재 한 미국인 학자는 ‘디스 위크 인 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는 건 결국 아베 전 총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베 전 총리의 아첨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관세를 부과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시바 총리는 아베 전 총리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과 실질적인 교류도 거의 없는 상태라고 매체들은 전했다. 한편 아사히는 G7에서의 정상회담이 미국의 관세와 관련한 무역협상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