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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대규모 미정산 사태를 불러일으킨 티메프 사태는 약 1조 2800억원 규모의 피해(금융감독원 기준)를 일으키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소비자들은 물론 티메프에 입점한 셀러들은 수천~수억대 정산금을 받지 못하면서 줄도산을 면치 못했고, 아직까지 대부분이 대금을 변제받지 못한 상태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와 금감원이 지난해 10월 대규모 유통업법 개정안,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등을 추진했고, 비슷한 내용으로 의원 발의 법안도 나왔지만 아직도 국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다.
김남근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장기 미정산 대금은 불공정한 거래 유형인만큼 정산기일 상한제를 추진하려고 법안을 냈었고, 당시 정부에서도 대규모 유통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법안 심사가 제대로 안됐다”며 “오는 22일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에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티메프 사태 후속 조치 미비를 전 정부의 패착으로 몰고 가는 모양새다. 유통업계에서도 다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우선 대규모 유통업법 개정안 통과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존 대규모 유통업법은 오프라인 유통업체 대상으로만 정산기일 40~60일을 보장했지만, 정부 개정안엔 이커머스 플랫폼까지 포함시켰다. 일정 규모 이상 플랫폼 대상으로 정산기일을 20~30일로 단축시켜야 하는 것이 골자다. 또 판매대금의 50%도 제3자 기관에 예치(에스크로)하거나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법 적용 대상은 중개수익 100억원 또는 거래액 1000억원 이상인 곳까지다.
현재 공정위가 추진하는 대규모 유통업법 개정안 외에도 일부 의원 발의안들까지 나와 있지만, 해당 법안들은 지난해 10월부터 9개월간 국회에 계류돼있는 상태다. 그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등 정치적 사안으로 인해 법안 심사 자체가 후순위로 밀렸던 탓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를 중심으로 다시금 불을 지피는 모습이다.
이커머스 업계에선 한숨이 새어나온다. 기존 오프라인 유통 중심으로 만들어진 법안을 업태가 다른 이커머스에 숫자와 규모만 바꿔 적용한다는 점에서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법 개정 자체가 이커머스 산업 전반에 유동성 악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성장 제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플랫폼 거래량이 줄면 중소 납품업체들에까지 여파가 미칠 수도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도 어음, 외상거래 등 다양한 대금지급 방식이 여러 산업군에서 돌아가고 있는데다, 이커머스 거래 형태도 위·수탁거래, 직매입 등 다양한만큼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이커머스 업계 의견을 다각도로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을 전문으로 하는 법조계 일각에서도 신중한 규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규모 유통업법 개정안에 이커머스를 포함시키더라도 하위 법령에 ‘일몰’ 규정을 담아 다시 점검 과정을 부여하는 식의 접근도 필요하다”며 “그 전에 자율계약, 모범거래 관행 등의 연성규범으로 자체적인 제도 개선을 촉구하거나 분쟁조정 정보를 공시하는 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새 정부 이후 공정위도 다시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공정위는 11일 유통업계와 실무급 간담회를 연다. 이번 간담회에선 대규모 유통업법에 담긴 정산주기 적정성 등에 대해 업계 의견을 듣는 자리로 전해졌다. 사실상 대규모 유통업법 개정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