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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찾아헤맨 내 딸, ‘고아’라니”…법정 공방,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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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원 기자I 2025.06.24 16:46:04

1975년 6세 딸 실종 7개월만에 입양돼
44년간 몰랐던 가족, 국가 책임 첫 추궁
피고 측 "책임 없다, 기록 없다" 부인
'소멸시효' 쟁점 부상…법원 판단 주목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실종 아동을 부모 몰래 해외로 입양 보낸 국가의 책임을 묻는 대한민국 첫 손해배상 소송의 첫 변론이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부장판사 김도균) 심리로 열렸다.

원고 측은 “경찰의 수사 태만과 국가의 직무유기 등 총체적 불법행위로 비극이 일어났다”고 포문을 열었다. 피고 측은 책임이 없거나 기록이 없다고 맞서며 ‘소멸시효’ 문제를 제기해 향후 치열한 법정 다툼을 예고했다.

특히 이번 소송은 지난 3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해외입양 과정의 조직적인 인권침해를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 인권침해’로 규정한 이후 열려 사법부의 판단에 관심이 모아진다.

지난 14일 경기 파주 엄마품동산 내 가장자리에 있는 기억의 벽에서 한 입양인이 입양인들의 이름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기억과 치유의 공간’인 엄마품동산은 8년여의 준비 끝에 이날 공식 개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첫 변론서 드러난 양측의 엇갈린 주장

이날 법정에서 원고 측 대리인은 1975년 딸 신경하 씨(당시 6세)가 실종된 후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원고 측 대리인은 “어머니 한태순 씨가 청주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수배 등 적극적인 수사 활동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가가 부양의무자 확인 없이 미아(迷兒·길이나 집을 잃고 헤매는 아이)를 기아(棄兒·버려진 아이)로 처리해 입양을 진행한 점, 아이를 보호했던 영아원과 입양을 주도한 홀트아동복지회가 연고자를 찾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점 등을 ‘총체적 불법행위’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국가의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당시 신씨를 보호했던 영아원 측은 “관련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입양을 담당했던 홀트아동복지회 측은 “소멸시효가 완성됐을 의문이 있다”며 핵심 쟁점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은 44년간 딸을 찾아 헤맨 한 가족의 절절한 사연에서 시작됐다. 1975년 충북 청주에서 당시 6살이던 딸 경하 씨를 잃어버린 어머니 한씨와 가족들은 생업도 뒤로한 채 전단지를 돌리고 방송에 출연하는 등 딸을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맸다.

기적처럼 딸과 다시 연락이 닿은 것은 44년이 흐른 2019년, 유전자(DNA) 정보를 통해 가족을 찾아주는 비영리 단체 ‘325캄라’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도 잠시, 가족들은 딸의 입양 서류를 통해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했다. 딸은 실종 두 달 만에 입양기관으로 인계됐고, 7개월 만에 ‘고아’로 서류가 꾸며져 미국으로 출국했던 것이다.

지난해 10월 소송을 제기하며 기자회견에 나선 어머니 한씨는 “멀쩡한 부모를 두고 고아로 둔갑시켜 해외로 입양을 시킨 것”이라며 “고통으로 잃어버린 시간이 너무 분하다. 천인공노할 일을 묵과한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고 백배사죄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번 소송의 향방은 법원이 ‘소멸시효’ 문제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피해 사실을 안 날인 2019년부터 시효를 계산해야 한다는 원고 측 주장과, 국가의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소멸시효 법리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주목된다.

재판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경찰청, 청주시 등의 사실조회 회신을 기다린 뒤 심리를 이어가기로 하고 다음 변론기일을 오는 9월 23일로 지정했다.

개인의 비극 넘어 ‘국가 인권침해’로

해외입양인 김유리(오른쪽)씨가 지난 3월 26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열린 진실화해위원회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박선영 위원장에게 무릎을 꿇고 진실규명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스1)


신경하 씨 가족의 사례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과거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산업화된 해외입양’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해외입양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실태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국가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입양 실적을 위해 △미아를 고아로 허위 신고하거나 △사망한 아동의 신원으로 다른 아동을 입양 보내는 ‘신원 바꿔치기’ △입양기관 주소를 아동 발견 장소로 일괄 기재하는 등의 서류 조작이 조직적으로 자행됐음이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이를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국가의 공식 사과와 피해자 구제 조치 등을 권고했다.

당시 기자회견에 나선 프랑스 입양인 김유리 씨는 “어머니가 저를 임시로 고아원에 맡겼지만, 입양동의서도 없이 프랑스로 보내졌다. 제 입양은 범죄입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오열해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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