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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연말정산 때 노조 조합비에 대해 세액공제(15%)를 해왔는데, 윤석열 정부는 노조가 회계공시를 해야 조합원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2023년 9월 노동조합법 시행령과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특히 단위 노조가 공시를 해도 상급단체가 공시하지 않으면 단위 노조도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도록 했다. 양대노총 산하 산별노조에 가입한 노조라면 산별노조와 총연맹이 모두 공시해야 단위 노조 조합원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연좌제’란 비판이 잇따랐다.
정부가 노조 회계공시의 연좌제 방식 폐지를 검토하고 나선 것은 정부 역시 이러한 방식이 불합리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노조 회계공시는 윤 정부가 내세운 ‘노사 법치’ 확립의 핵심 이행 과제로 도입됐으나, 일선 조합원을 볼모로 양대노총과 주요 산별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다만 정부는 노조 회계공시 제도 자체는 폐지를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단위 노조가 상급단체에 가입할 때 회계공시를 참고하는 등 일정 효과를 거뒀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 내에선 노조 회계공시를 당장 폐지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 공약에 노조 회계공시 관련 내용이 없는 데다, 회계공시 자체가 위법적 요소를 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크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는 노조 회계공시를 노조 자주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반노동 정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조세 행정을 빙자해 노조 내부운영에 과도하게 관여하고, 무엇보다 ‘노동계는 돈 관리를 제대로 안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양대노총은 오는 2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회계공시를 비롯해 ‘노동을 짓밟는 위법한 시행령·행정지침 원상복구’를 요구할 계획이다.
노조 회계공시의 존폐 여부가 이재명 정부의 노정 관계를 가늠할 척도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회계공시 개정 또는 폐지는 시행령만 개정하면 된다. 김영훈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 고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날 민주노총은 입장문을 통해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 정책을 폐기하고, 노동권 보장을 위한 국정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정부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현재 공시 대상 노조 중 회계공시에 참여 중인 노조는 89.1%(올해 상반기 기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노조 공시율은 97.1%, 민주노총 소속은 83.3%를 기록했다. 민주노총은 금속노조와 산하 조직이 올해도 공시에 참여하지 않으며 공시율이 낮게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