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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까지만 해도 그는 “새 정부와 전향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 또 총회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하루 만에 마음을 바꿔 사퇴했다.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이날 공개적으로 조건부 수련 재개 입장을 밝히며 더는 버틸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단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이 커졌다. ‘단일대오 미복귀 투쟁’을 강조했던 박 위원장과는 달리 서울대병원 등 전공의는 △윤석열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료개혁 실행방안 재검토 △보건의료 거버넌스 의사 비율 확대·제도화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을 개선, 수련의 연속성 보장을 전제로 수련을 재개할 뜻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직 전공의는 “아마도 조만간 대전협 총회를 열고 비대위 존속이나 새 위원장 선출 등을 정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사직 전공의에게 공유되는 새 방침이 정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제자들이 돌아오길 고대하던 수련병원 측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분위기다. PA(진료지원간호사) 등 진료보조인력이 가세하면서 일선 수련병원들의 근무 여건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수련 지도의사들의 업무가 가중된 상태다. 여기에 더해 사태가 장기화되면 전문의 배출 인력이 줄어드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는데 그나마 지금에라도 복귀하면 필수의료에 필요한 전문의 배출 인력 감소 현상을 그나마 완화할 수 있다.
다만 전공의 1년 차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전문의 시험 일정에 맞추지 못해 시험을 보지 못하는 불이익이 전공의들의 복귀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조건부 복귀 의사를 밝힌 전공의들은 수련의 연속성을 보장해달라고 명시했다. 레지던트 3년 차 전공의가 지금 복귀하면 규정상 1년 차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를 3년 차서부터 시작할 수 있게끔 해달라는 요구다.
이에 대해 한 대학병원 교수는 “사직 전공의들이 전문의 시험 일정이 밀리고, 새로 들어온 전공의에게 밀려 이미 자기 자리를 뺏겼다는 생각에 복귀 자체를 포기할 수 있는데, 이 점은 정부에서 배려해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정부에서도 전공의 처우개선 정책을 도입해 시행 중이니, 일단 돌아와서 수련에 집중하고 교수들 또한 전공의와의 신뢰 회복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한편 지난 5월 전공의 추가모집 결과 860명이 복귀했다. 현재 전국 수련병원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는 2532명으로 의정갈등 이전 전공의(1만 3531명)의 18.7%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