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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의 최신 해외 학술 정보에 실린 ‘유연한 은퇴와 최적 조세 정책’ 논문에서는 근로자의 건강 악화가 노동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근로자에게 은퇴 시점에 대한 자율성을 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구자들은 일률적인 정년 연장이 근로자의 건강 상태 등 개인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해 오히려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낮출 수 있다는 문제 의식에 착안했다. 정년 연장 문제를 기업에 주는 부담이나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사회적 후생 차원에서 평가했다. 분석에는 미국의 데이터와 제도가 활용됐다.
논문에 따르면 건강 악화는 노동공급(일하는 시간)의 비볼록성(non-convexity)을 초래한다. 건강이 나빠질 경우 출근 준비와 같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노동의 고정비용이 급격히 커지면서 근로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예측할 수 없어진다는 뜻이다.
또 건강 악화로 개인의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임금이 줄거나, 사망 위험이 높아졌다는 인식 때문에 저축을 줄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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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개인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정년을 연장할 경우, 급격히 증가하는 노동의 고정비용을 근로자가 감당하지 못해 사회적 후생 손실이 발생한다”며 “근로자가 건강 상태에 따라 합리적으로 은퇴 시기를 결정할 경우 사회적 후생과 재정적 순이익 모두 크게 개선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널리 도입된 ‘연금 수급 연령별 급여 차등화 정책(Delayed Retirement Credits·DRC)’을 확대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에 따라 지급받는 연금액이 달라지는 제도다. 연금을 일찍 받으면 연금액이 줄고, 늦게 받으면 연금액이 늘어난다.
아울러 사회보장제도의 급여를 일률적으로 인상하기보단 소득 하위계층의 연금 급여율을 우선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소득 재분배를 촉진하고 사회적 후생을 효과적으로 증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근로자의 건강 상태와 소득 수준 등 개인적 특성에 따라 발생하는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노후 소득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건강·소득 이질성을 반영한 다층적 사회 안정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논문은 지난달 3일 미국 경제정책연구소(CEPR)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