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는 10일 “기업 승계와 관련한 주식 등을 상속하는 경우 자본이득세를 일부 도입해야 한다”며 “부의 재분배와 기업의 계속성을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상속세-자본이득세 하이브리드(결합)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 상속세 개편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재계가 선제적으로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자본이득세는 유산을 받는 때가 아니라 향후 매각할 때 가격 상승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기업 주식은 경영권 유지를 위해 처분하기 곤란하고 비상장 주식은 거래가 어려워 현금화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상속 즉시 세금을 부과해 주식을 팔도록 하는 것보다 세금 납부 시기를 처분 시점으로 미뤄 기업을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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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높은 상속세 최고세율(50%)과 최대주주 할증평가(20%)로 인해 전 세계에서 기업 승계가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다. 세 부담이 크다 보니 기업의 계속성이 단절돼 ‘100년 장수기업’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투자·성장 약화, 주주 환원 제약 같은 부작용마저 만연해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현행 상속세는 기업 승계를 단지 부의 대물림으로 인식했던 시대에 도입돼 최대주주 할증평가 등 주식에 대해 상속세를 중과세하면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했다.
기업뿐만 아니라 자산가의 국적 이탈도 심화하고 있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사 헨리&파트너스에 따르면 지난해 100만달러 이상 순자산 보유자의 국적 순유출 규모에서 한국은 1200명으로 중국(1만5200명), 영국(9500명), 인도(4300명)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인구 대비로는 영국 다음으로 많다.
실제 이같은 이유로 인해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한 나라들이 적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가 없는 국가는 14개국에 달하고,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한 나라는 캐나다, 호주, 스웨덴, 뉴질랜드 등이 있다. 싱가포르는 2008년 당시 최고 60%에 달하던 상속세를 전면 폐지해 금융과 인재 유입을 확 늘린 나라로 손꼽힌다.
상의는 납부 시점별, 과세 대상별, 상속가액별 등으로 세 가지 결합 방식을 제안했다. 납부 시점에 따른 결합의 경우 피상속인 사망 시점에 최고 30%의 상속세를 적용하고, 이후 주식 매각 시점에 20%의 자본이득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방식이다. 승계 직후 집중되는 세 부담을 완화해 주식 매각 유인을 줄이고 기업 경영의 연속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과세 대상별로 보면, 부동산과 채권처럼 경영권과 무관한 재산에는 현행 상속세율(최고세율 50%)을 적용하고, 경영권과 관련한 주식에는 자본이득세(세율 20%)를 적용하는 방식을 상의는 제안했다. 경영권 주식은 기업의 계속을 위해 장기 보유해야 하므로 일반 재산과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다.
상의는 아울러 전체 상속 재산 중 기준금액 이하분은 현행 상속세를, 초과분은 자본이득세를 각각 적용하자고 했다. 현행 가업상속공제 한도인 600억원을 기준으로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못하는 기업에 한해 600억원 초과분에는 자본이득세를 적용하고, 600억원 이하분에는 현행 상속세를 유지하는 방안이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현재 기업들은 보호무역 심화, 산업 대전환 등 구조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며 “기업 환경을 둘러싼 제도 차이가 위기 극복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