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골 마을을 살린 ‘핫바 비즈니스’
가미카쓰초에선 ‘핫바 비즈니스’라 불리는 독특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일식 요리에 장식으로 쓰이는 나뭇잎을 농가에서 재배하고 수확한다. 음식 위를 수놓는 작은 잎이 지역 전체의 경제를 움직인다. 핵심 조직은 ‘판게아’다. 민관이 함께 설립한 회사다. 이곳의 최고경영자는 노노야마 사토시(55세, 사진). 2011년 인턴십을 계기로 마을에 정착했다. 미국 NASA에서 일하던 그는, 촌장과 이로도리 창립자이자 대표인 요코이시 도모지의 제안을 받고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도쿄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데 단풍잎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마을엔 저런 잎이 너무 많았죠. 팔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1980년대, 가미카쓰초는 감귤 농사가 한파로 실패하면서 수입원을 잃었다. 당시 가미카쓰초 농협 직원이던 28세의 요코이시는 잎을 파는 아이디어를 냈고, 농협이 중심이 돼 브랜드 ‘이로도리’를 출범시켰다. 일본어로 ‘이로도리(彩り)’는 색채, 장식, 아름다움을 더한다는 뜻을 가진다. 음식 위에 올려진 한 장의 단풍잎처럼, 이 브랜드는 요리에 생기를 더하는 동시에 마을 경제에도 생기를 불어넣었다.
지금은 140곳의 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연간 매출은 2억 7000만엔(약 25억 3000만원). 개별 농가는 연 2000만엔(1억 8770만원)을 벌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단풍과 산초, 남천잎 같은 장식용 잎에서 나온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ICT(정보통신기술)다. 매일 아침 8시, 농협(JA)은 전국 음식점에서 접수된 주문 내역을 실시간으로 공개한다. 농민들은 자신의 태블릿이나 컴퓨터로 확인한 뒤 출하를 결정한다. 선착순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이 있으니 활력이 생깁니다. 잎사귀를 잘 고르려면 감각도 필요합니다. 노인들에게는 운동이고 자존심입니다.” 노노야마 씨의 말이다.
|
일하는 노년, 더 건강하고 행복하다
가미카쓰초의 농민 평균 연령은 65세다. 그러나 이들은 태블릿과 드론을 쓴다. 이 마을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농업에 ICT를 접목한 사례 중 하나다. 기술은 세대를 가로막지 않았다.
자연의 잎사귀는 채취 대상이 아니다. 농가가 직접 키워야 한다. 농가는 자신의 밭이나 산에서 잎이 자라도록 가지부터 기른다. 출하되는 잎 종류는 연간 320종에 달한다. 농가마다 출하 품목이 다르다. 계절, 색감, 크기, 용도까지 고려해 스스로 기획하고 생산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기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까지 포함되기에 ‘디자인 농업’이라 부를 만하다.
이 비즈니스에 대기업이 뛰어들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핫바 비즈니스의 전체 시장 규모가 연 3억 5000만엔(약 32억 8000만원) 정도에 불과한 틈새시장이기 때문이다. 그중가미카쓰초가 60~70%를 차지한다. 남은 시장도 크지 않다. “돈이 크게 안 되니 대기업도 못 들어옵니다. 대신 지역 주민이 운영할 수 있습니다. 그게 농촌이 살길입니다.”
이 산업은 복지와도 연결된다. 가미카쓰초의 7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연간 의료비(86만엔)는 도쿠시마현 평균(102만엔)보다 16만엔 낮다. 노인들이 건강하다는 뜻이다. 이들은 새벽 7시에 일어나 산에 오른다. 잎을 따고 선별하고 포장한다. 누군가는 이 일을 번거롭다 하겠지만 이들에게는 삶의 루틴이고,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다.
|
일본을 바꾼 가미카츠초의 변화
가미카쓰초는 핫바 비즈니스를 기점으로 다양한 분야로 확장했다. 판게아는 글램핑 숙소, 제로 웨이스트 교육센터를 운영하며 기업 연수와 행정 시찰을 유치하고 있다. ‘제로 캠프’는 매년 청소년들에게 환경교육을 제공하며, 지역 거주자와 외부인을 잇는 실천형 플랫폼 역할도 한다. 단순한 상품 출하에서 체험, 교육, 관광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마을 전체에 순환 경제를 만들어냈다.
지속가능성과 확장성 확보를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판게아는 젊은 세대를 위한 주거·농지 연계 정착 지원과 함께, ICT 기반 디자인 농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동시에 핫바를 중심으로 체험 관광, 환경교육, 제로 웨이스트 사업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마을 전체를 하나의 복합 산업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있다. 소규모 틈새사업이 지역 전체를 움직이는 성장 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가미카쓰초의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직면한 농산어촌 지역에서, 잎사귀처럼 ‘규모는 작지만 고부가가치인 틈새 자원’을 찾고, ICT를 활용한 실시간 유통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식은 벤치마킹할 가치가 있다. 전남 구례군의 산수유 공동체, 완주군의 로컬푸드 직매장은 이미 고령자 중심의 참여형 생산 모델을 실현 중이다. 여기에 더해, 디지털 역량 강화와 체류형 교육 콘텐츠를 융합한다면 더 강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농촌협약제, 유휴시설 리모델링, 마을기업 육성 같은 정책과도 자연스럽게 결합이 가능하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겁니다. 단순하고 가볍고, 재미있는 일이면 됩니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그 일을 꾸준히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노노야마 씨는 한국 농촌에도 중요한 건 ‘기술 이전’이 아니라 ‘사람의 동기’라고 강조했다.
|
‘이로도리(彩り)’는 일본 가미카쓰초가 운영하는 고령자 중심의 농촌 유통 브랜드다. 단풍, 남천, 산초 같은 장식용 잎사귀를 전국 고급 일식당에 공급하는 사업으로, 1986년 요코이시 도모지의 발상에서 출발했다.
이로도리는 ICT 기반 실시간 주문 시스템을 도입해, 고령 농민들이 직접 시장 데이터를 확인하고 출하를 결정하는 구조를 갖췄다. 단순한 채집이 아니라 계절과 품종을 고려한 ‘자기 기획형 디자인 농업’으로 진화했으며, 평균 연령 75세 이상의 농가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이 사업은 고령자에게 경제적 수익과 자존감을 제공하고, 농촌 자원의 가치를 재발견한 모델로 평가받는다. 현재 연간 약 27억 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며, 지속가능한 지역 산업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