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이 대통령의 업무 형태는 ‘경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격식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말 많은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들었습니다. 지역균형발전, 내수경기 진작, 통합과 안보 등 너무나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대통령이 특별히 인공지능(AI)에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지난 25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렸던 타운홀 미팅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타운홀미팅 말미 한 AI스타트업 창업자가 실질적인 제언을 하자 ‘귀가 쫑긋’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GPU 1만장을 당장 깔아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안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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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창업자가 서비스 측정 대상으로 돼지를 삼았던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사람이나 차량에 대한 사진·영상 데이터를 수집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대안으로 돼지 무게를 측정하는 일을 시작했지만, 데이터만 확보되면 얼마든지 다른 분야에 응용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개인정보보호법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법입니다. 소중한 우리의 개인·생체정보가 함부로 수집되고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합니다. 다만 AI 산업에 있어서는 ‘딜레마’와 같은 것도 사실입니다. ‘나의 개인정보 보호’라는 인격적 가치와 ‘AI산업 진흥’이라는 산업적 가치가 맞붙어 있는 것이죠. 둘 중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손 들어주기 힘듭니다.
물론 그간 우리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AI가 바둑으로 이세돌 9단을 이겼던 2016년 알파고 쇼크 이후 공공정보 등에 대한 비식별화·공개를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전세계적인 AI 발전 속도와 비교해 한없이 늦다는 점입니다.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데이터가 수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정보에 국한된 데이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예로 의료진단AI 업체에서는 수년 넘게 의료정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 중에 있습니다. 어느정도 데이터를 확보하긴 하지만 양껏 마음껏 쓰면서 AI를 고도화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거의 10년에 걸쳐 제기됐던 딜레마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AI산업이 단시간 안에 규모를 키우기는 어려워보입니다. 과거 고속도로, 초고속인터넷망 구축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섬세하게 접근해야하는 게 AI 분야인듯 합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늦은 듯 하지만, 관점을 바꿔 보면 ‘보다 싸지면서 검증된 AI 기술과 하드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왜냐, 컴퓨팅 파워와 관련된 하드웨어는 고속도로에 깔리는 아스팔트와 달리 해가 지날 수록 성능이 개선되고 가격이 싸집니다. 한 해를 기다리면 더 저렴한 비용에 더 좋은 성능의 하드웨어(GPU 등)을 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GPU 구매 갯수에 목표를 만들고 이를 채워나가려는 노력은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수만장, 수십만장 한꺼번에 GPU를 사고 놀리는 것은 ‘엔비디아 좋은 일’만 시킨다는 얘기죠. 이왕 늦는 김에 우리나라 자체적인 GPU산업을 키워가는 게 더 좋을 수 있습니다. 한국 제조업이 전통적으로 강했던 ‘수입대체’ 전략을 AI에도 사용하는 셈입니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 한국 AI스타트업 사이에서 ‘딥시크’ 같은 모델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보다 저렴하면서도 적은 컴퓨팅 파워를 사용하는 거대 언어모델(LLM) 시대의 도래입니다
지금은 챗GPT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이들의 천하가 계속될 것이라는 법도 없습니다. 인터넷 초창기 시대였던 1990년대말 2000년대 초 최강자는 ‘야후’였습니다. 한차례 닷컴 버블을 겪으면서 여러 후발주자들의 입지가 공고해졌고 한국에서는 네이버, 다음 등의 똘똘한 업체들이 나왔습니다. 이들 업체은 경쟁 속에 살아 남았고 ‘야후마저 밀어낸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AI업계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네이버에서 일하며 실무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대통령실 AI미래수석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맡게 된 게 다행인듯 합니다. 그들 또한 단순하게 GPU 목표 구매 갯수 맞추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을 알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필요한 수의 GPU를 확보해 나가되 개인정보보호법과 AI 발전 사이에 절충점을 마련해 나가야 합니다. AI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의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특구를 지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