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문구를 보고 모바일 앱으로 신용카드를 신청한 직장인 김모씨는 며칠 뒤 당황했다. ‘즉시 지급’이라던 혜택은 아무리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앱 하단에 숨겨진 ‘이벤트 신청 페이지’에서 별도로 응모해야 했다. 가입은 단 3분이면 끝났지만, 보상은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만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
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다크패턴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과 소비자 기만 사이에 걸쳐 있어 규제 공백이 발생하기 쉽다”며 “특히 금융서비스는 소비자 피해가 반복적·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만큼 별도의 규율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7월 ‘온라인 다크패턴 자율관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 2월부터 전자상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해 6가지 유형의 다크패턴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고지 없는 요금 갱신(숨은 갱신), 일부 가격만 노출(순차공개 가격), 옵션 자동선택, 시각적 강조를 통한 선택 유도, 탈퇴 방해, 반복간섭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중 숨은 갱신을 제외한 나머지 유형은 금융상품 판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전자상거래법이 전반적인 유통·거래 환경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금융상품의 복잡한 구조나 장기적 이용특성은 규제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앱에서도 다크패턴이 흔히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가입 유도 이벤트가 대표적이다. ‘즉시 혜택 제공’이라 광고하지만, 실제로는 별도 페이지를 통해 신청해야만 보상이 주어지는 식이다. 연금저축, ISA 등 복합상품 가입 과정에서는 여러 계좌가 자동으로 기본 설정돼 있어 소비자가 원하지 않아도 함께 개설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마이데이터 서비스 동의를 유도할 때 ‘숨은 혜택’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로 동의를 유도하는 경우도 다수 확인됐다. 정 연구위원은 “이러한 행위는 소비자의 정보 결정권을 침해하고, 무의식적 선택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규제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해지·이체한도 변경 등 사후 절차 역시 불편함이 극심하다. 모바일 앱에서는 주요 설정 변경이 어렵거나 고객센터를 통해서만 가능한 경우가 빈번하다. 이는 전자상거래법상 ‘탈퇴 방해’ 유형에 해당될 수 있다. 안내문이나 동의서의 글씨가 지나치게 작거나 가독성이 낮아, 소비자가 내용을 읽지 않고 ‘동의’ 버튼을 누르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
정 연구위원은 특히 위탁매매 앱의 ‘과잉 기능’에 주목했다. 주문 즉시 체결되는 주식 거래 특성에도 불구하고, 일부 앱은 비밀번호 입력 없이 한 번의 클릭으로 거래가 가능하다. 취소 불가능한 실수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현재 금융상품에 대한 다크패턴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기존 금융소비자보호법이나 온라인 설명의무 가이드라인은 대부분 대면 영업이나 설명 책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모바일 중심의 UI 설계 문제까지 포괄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정 연구위원은 “기존 가이드라인은 설명서 제공 여부, 클릭 횟수 등 기술적 준수 여부 중심”이라며 “소비자의 심리적 왜곡을 유발하는 인터페이스를 직접적으로 판단할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