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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F 상품이 다양해지고,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시장에서 소외당하는 ETF들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장 폐지된 ETF 개수는 총 22개입니다. 연간 상장폐지 ETF 수는 2020년 29개, 2021년 25개, 2022년 6개를 기록했습니다. 2023년에는 14개, 2024년에는 51개입니다. 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ETF가 정리되는 규모도 늘고 있는 셈이죠.
ETF가 상장 폐지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기초지수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괴리가 계속 벌어져 있을 경우, 계약을 체결한 유동성공급자(LP)가 없는 경우 등등입니다. 보통 ETF 상장폐지의 원인은 원본액 미달이 가장 많습니다. ETF를 설정하고 1년 이상이 지난 상품이 1개월 이상 ETF 원본액 및 순자산 총액이 50억원 미만인 경우 투자신탁의 해지가 가능합니다.
ETF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그 개수도 많아지면서 각 운용사는 운용에 따른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흥행에 실패한 ETF들을 빠르게 정리합니다. 그렇기에 특히 한정된 자원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야 하는 중소형 운용사들이 흥행에 실패한 ETF를 빠르게 정리하곤 합니다.
반면, 비교적 역량이 되는 대형사들은 흥행에 실패한 ETF를 최근 시장 트렌드에 맞춰 고쳐 내기도 합니다.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키움투자자산운용은 5개 ETF를 정리했고, KB자산운용은 6개, NH아문디자산운용은 7개의 ETF를 정리했습니다. 업계 쌍두마차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올해 ETF를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올해 상장 폐지된 ETF들을 주목해보면 한때 미래 기술이라 불리는 메타버스 ETF가 줄줄이 상장폐지 됐습니다. ‘SOL 한국형글로벌플랫폼&메타버스액티브’, ‘RISE 글로벌메타버스’, ‘HANARO 미국메타버스iSelect’ 등입니다.
이들 ETF가 등장했을 때는 당시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던 때입니다. 심지어 페이스북이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꾸면서 절정에 달하는 등 그야말로 ‘광풍’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었고, 실제 구현된 서비스들이 기대에 비해 너무 떨어지면서 관심이 꺾였습니다. 지금의 생성형 AI는 2022년 챗GPT 공개 이후 일상으로 스며들면서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시장의 주도주가 되고 있지만, 메타버스는 다른 길을 걸은 셈이죠.
앞서 언급했듯, 대형사는 메타버스 ETF를 상장 폐지하기보다는 ETF의 체질을 바꿉니다. 중소형사에 비해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이 되고, 순위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기껏 모인 투자자금을 다시 반납할 수 없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삼성자산운용은 최근 ‘KODEX 미국메타버스나스닥액티브’를 ‘KODEX 미국나스닥AI테크액티브’로 종목명을 변경하고, 최근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는 팔란티어, 브로드컴 등 종목을 담으면서 시장 트렌드에 맞춰 ETF를 진화시켰습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지난 4월 ‘TIGER 글로벌 메타버스액티브’를 ‘TIGER 글로벌AI플랫폼액티브’로 명칭 변경을 했습니다.
메타버스 관련 ETF 외에 살펴보면 시장 트렌드와 거리가 있는 바이오 관련주들도 줄줄이 정리됐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백신 치료제 관련주가 시장의 주목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황과 맞물립니다. NH아문디자산운용은 2022년에 출시한 ‘HANARO 글로벌백신치료제MSCI’, 2023년에 출시한 ‘HANARO K-메디테크’를 차례로 상장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이밖에 키움투자자산운용은 ‘KIWOOM SK그룹대표주’, ‘KIWOOM 코스닥글로벌’, ‘KIWOOM 글로벌전력반도체’를 비롯해 리츠 관련 ETF인 ‘KIWOOM 리츠이지스액티브’, ‘KIWOOM 글로벌리츠이지스액티브’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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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주식과 달리 ETF 바스켓 있는 구성 종목들을 현금화해 모든 비용을 제하고, 투자자들에게 나눠준다는 의미입니다. 거래소도 ETF 상장폐지가 발생할 때마다 투자자 참고사항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각 운용사는 시장의 수요에 맞게 발 빠르게 상품을 출시하기도 하고, 또 정리합니다. 보통 ETF 출시까지 수개월이 걸립니다. 그래서 운용사들은 시장의 ‘반짝’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아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산업군으로 자리 잡을 만한 테마를 고심하고 출시합니다.
이에 따라 어떤 테마의 ETF가 상장되고, 상장 폐지되는지 입·출구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시장이 어떤 산업군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최근 트렌드는 무엇인지 또 어떤 테마가 저물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ETF는 ‘상품’인 동시에, 시장 관심을 비추는 거울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