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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는 금요일 미국의 신용등급을 기존 최고등급인 Aaa에서 Aa1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1949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최고 신용등급을 박탈한 셈이다.
이번 하향 조정은 무디스가 지난 2023년 11월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낮춘 지 1년여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무디스는 다만 현재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조정했다.
무디스는 성명에서 “예산 적자 확대는 미국 정부의 차입 증가 속도를 가속화시켜 장기적으로 금리를 끌어올릴 것”이라며, “현재 의회에서 논의 중인 어떤 예산안도 지출과 수입 간 격차를 실질적으로 줄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미국 경제와 금융 시스템의 강력한 기반을 인정하지만, 이러한 강점들이 더 이상 재정 지표의 악화를 충분히 상쇄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미국의 연간 연방 재정적자가 2조달러에 달하며 국내총생산(GDP)의 6%를 초과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는 2017년 감세법(Tax Cuts and Jobs Act)의 조항 연장을 포함하는 세제 패키지를 협상 중인 상황에서 지출 증가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에 따르면 공화당이 제안한 세제 개편안은 향후 10년간 정부 부채를 3조4000억달러 증가시킬 것으로 추정되며, 임시 조항이 2035년까지 연장될 경우 총 비용은 5조 달러에 이를 수 있다. 해당 조항이 영구화되면, 2055년까지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0%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연구소는 분석했다.
무디스는 연방 부채 부담이 2024년 GDP의 98%에서 2035년 약 134 %로 증가 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가 GDP 대비 2024년 98%에서 2035년 134%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이자지출 역시 세입의 18%에서 30%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경제학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 전쟁 이후 미국 경제가 약세를 보이면 재정적자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기가 위축되면 정부 지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지만 감세로 인해 이를 충분히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몇년간 금리를 상승하면서 정부의 부채 상환 비용이 늘어나며 정부부채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과도한 차입으로 인해 미국의 전체 국가 부채 규모는 경제 규모를 초과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미국 재정에 대한 경고로 해석하고 있다. 피터슨재단의 마이클 피셔 연구원은 “정치적 교착 속에서 재정지출 확대가 이어지면서 시장의 신뢰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며 “초당적 재정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블리클리 파이낸셜 그룹의 최고투자책임자 피터 북바는 “미국 국채는 외국 수요가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를 겪고 있으며, 상환해야 할 부채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면서 “이번 무디스의 조치는 미국의 부채와 재정에 심각한 부담이 있다는 경고의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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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최근 트럼프 관세 영향으로 미국 국채 금리가 다시 치솟고 달러 약세가 나타난 ‘셀 USA’ 현상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신용등급 하향은 국채 금리 상승과 연방정부의 차입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재정 부담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미 국채의 안전성이 훼손됐다는 이유로 더 높은 수익률(프리미엄)을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미국 정부는 더 많은 이자를 지불해야하고 정부부채가 더 많아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무디스의 발표 직후 일부 금융시장에서는 변동성이 확대됐다. 이날 뉴욕채권시장에서 국채금리는 잠잠한 움직임을 보이다 장 막판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등급에서 한단계 하향 조정했다는 소식에 급격히 흔들렸다. 글로벌국채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금리는 한 때 4.49%까지 치솟다 전거래일 대비 1bp(1bp=0.01%포인트) 빠진 4.445%에서 거래를 마쳤다.
달러는 장중 내내 강세를 보이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상승폭을 줄이며 전 거래일 대비 0.1% 오른 100.98에 거래를 마쳤다.
다만, 2011년 S&P가 미국을 강등했을 당시에는 미국 경제의 약세로 인해 오히려 국채 매수세가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미국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한편, 무디스는 공식적으로 1993년부터 미국 국채에 신용등급을 부여했으며, 1949년 이후 ‘AAA’ 등급을 유지해왔다. 피치는 2023년 8월, 정치적 갈등으로 부채한도 협상이 파국 직전까지 치닫자 미국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낮췄다. S&P는 이미 2011년에 미국의 AAA 등급을 처음으로 박탈했다.
현재 신용평가사 3사로 부터 최고 신용등급을 받고 있는 국가는 독일, 호주, 스위스뿐이다. 현재 미국의 신용등급 Aa1은 오스트리아, 핀란드와 동일한 수준이다. 한국은 최고 등급 한단계 아래 등급을 받고 있다. S&P에선 AA, 무디스에선 Aa2, 피치에선 AA- 등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