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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공항 닫혔다면 면세점 임대료는?[판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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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원 기자I 2025.07.19 12:30:00

■의미있는 최신 판례 공부방(34)
정부 조치로 영업불가시 임대료 전액면제 판결
''계약 목적 달성 불가능''이 핵심 판단 기준
감염병·재난상황 임대차분쟁 해결 기준점 제시

[하희봉 로피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사회의 풍경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텅 빈 공항, 굳게 닫힌 상점들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이의 기억 속에 선명하다. 특히 하늘길이 막히면서 공항 면세점들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내몰렸다. 여기서 중요한 법적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정부의 강제 조치로 장사를 아예 할 수 없게 되었는데, 과연 임대료는 그대로 내야 하는가?

사진=구글 imagen
수년간 이어진 이 분쟁에 대해 최근 대법원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 판결을 내놓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항 국제선 청사가 폐쇄된 기간 동안의 임대료는 전액 면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감염병이나 재난 상황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건의 시작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정부는 2020년 4월 6일부터 김포, 김해 등 지방 공항의 국제선 운항을 중단하고 모든 국제선 기능을 인천공항으로 일원화하는 초유의 조치를 단행했다. 졸지에 공항 면세점들은 영업을 할래야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면세점 업체들은 임대인인 한국공항공사를 상대로 청사 폐쇄 기간에 지급한 임대료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은 정부 조치로 인해 임대차 계약의 목적인 ‘면세점 영업’이 불가능해졌으니, 임대료 지급 의무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우리 민법의 ‘채무자위험부담주의’(제537조)에 근거한 주장이었다. 즉, 양 당사자의 책임 없는 사유로 임대인이 ‘사용·수익 가능한 상태를 제공할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되었으니, 임차인 역시 ‘임대료를 지급할 의무’를 면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1심과 2심 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일부만 받아들였다. 법원들은 팬데믹이라는 이례적 상황으로 인한 임차인의 어려움은 인정했다. ‘경제사정의 현저한 변경’을 이유로 임대료를 감액할 수 있다는 ‘차임감액청구권’(민법 제628조)을 받아들여, 청사 폐쇄 기간의 임대료를 70% 감액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임대료 전액을 면제해달라는 주장은 기각했다. 그 이유는 청사 폐쇄가 ‘일시적’인 조치일 뿐, 임대차 계약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해진 ‘종국적 이행불능’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임대차 계약은 여전히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고, 임차인들은 면세점 공간을 계속 점유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결국 하급심은 임차인들의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임대료를 대폭 깎아주는 선에서 판결을 마무리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하급심과 달리, 청사 폐쇄 기간 동안의 임대료는 100% 면제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첫째, 대법원은 임대인의 의무를 더 본질적으로 파고들었다. 임대차 계약에서 임대인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계약에서 정한 ‘목적’에 맞게 임차인이 사용·수익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 줄 의무(민법 제623조)를 부담한다. 이 사건의 계약 목적은 명백히 ‘면세점 영업’이었다. 그런데 정부 조치로 국제선 청사가 폐쇄되면서 면세점 영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이는 임차인(면세점)의 영업 능력 문제가 아니라, 임대인(공항공사)이 계약의 핵심 목적인 ‘면세점 영업이 가능한 공간’을 제공할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 이행불능 상태라는 것이다.

둘째, 대법원은 ‘일시적 불능’과 ‘종국적 불능’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했다. 하급심은 임대차 계약 기간 전체를 기준으로 불능 여부를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계속적 계약에서 특정 기간 동안 급부가 불가능하게 되었다면, 그 기간에 한해서는 종국적 이행불능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즉, 청사가 다시 열릴 것이었다 해도, 문이 닫혀 있던 그 수개월 동안은 임대인의 의무 이행이 전면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청사 폐쇄 기간 동안 임대인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할 수 없었고,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므로 채무자위험부담주의가 적용된다. 따라서 임대인은 그 기간의 임대료를 청구할 수 없고, 이미 받았다면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법적 공백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했다. 단순히 매출이 줄어드는 ‘영업 부진’의 위험은 임차인이 감수해야 할 몫이지만, 정부의 강제 조치 등으로 계약의 근본 목적인 ‘영업 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위험은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또 다른 감염병 사태나 재난, 이에 따른 정부의 영업 중단 조치 등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임대차 계약의 목적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정하는지가 향후 계약 당사자들의 위험 분담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음도 시사한다. 수년간의 법적 다툼 끝에 나온 이번 판결이 우리 사회의 계약 관계를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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