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출간 도서들, 베스트셀러 상위권 유지
양귀자 '모순', 책 유튜버 추천에 꾸준히 판매
정대건 '급류'·존 윌리엄스 '스토너' 등도 인기
'유퀴즈' 등 방송이 주목한 책들도 판매 늘어
"2030 동시대 독자들 공감대 형성한 결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과거의 콘텐츠가 시간을 거슬러 다시 인기를 얻는 ‘역주행’이 서점가에서도 대세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소셜 미디어와 방송 프로그램 등이 재조명한 과거 출간 도서를 읽으려는 독자들 손길이 이어지며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소년이 온다’ ‘스토너’ 등 상위권 포진 | 지난 6월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이 진열된 책을 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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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국내 대표 서점이 집계한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결산을 살펴보면 ‘역주행 베스트셀러’ 도서가 10위 안에 다수 포진해 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판매가 급증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2014), ‘채식주의자’(2007), ‘작별하지 않는다’(2021)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양귀자 작가의 ‘모순’(1998), 정대건 작가의 ‘급류’(2022),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2015) 등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끈다.
이 중에서도 ‘모순’은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났는데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소설 ‘원미동 사람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등을 발표하며 19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양귀자 작가가 1998년 발표한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25세 미혼 여성인 ‘안진진’을 주인공으로 결혼을 앞두고 눈앞에 마주하게 된 모순적인 현실과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책 관련 유튜버들의 추천, 현 시대의 여성들이 공감할 이야기라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 역주행 베스트셀러 ‘모순’, ‘급류’, ‘스토너’ 표지. (사진=쓰다, 민음사, 알에이치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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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당시에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모순’은 2020년을 기점으로 다시 독자들의 구매가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예스24 기준으로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약 2배(95.3%) 늘었을 정도다. 교보문고와 예스24의 6월 마지막 주 베스트셀러에서도 ‘모순’은 나란히 7위에 올라 있다.
정대건의 ‘급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등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화제가 되면서 판매량이 반등했다. ‘급류’는 저수지와 계곡이 유명한 지방도시 ‘진평’을 배경으로 17세 동갑내기 ‘도담’과 ‘해솔’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한 인플루언서가 ‘급류’를 읽으며 우는 영상을 올린 것이 라인에서 화제가 되면서 ‘역주행’ 흐름에 올라탔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급류’의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약 23배(2202.2%) 급증했다. ‘스토너’ 또한 유명 연예인의 추천을 계기로 역주행 대열에 합류했다. 예스24 집계 기준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약 9배(842.4%) 늘었다.
SNS·방송 프로그램서 재조명
 |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엄유진(가운데) 작가. (사진=‘유 퀴즈 온 더 블럭’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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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받은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역주행하는 사례도 계속되고 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이 조명한 책들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출간된 ‘초역 부처의 말’은 올초 ‘유퀴즈’에 출연한 아이브 멤버 장원영이 방송에서 언급하면서 판매량이 하루 만에 20배 이상 급증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
소설가 우애령이 글을 쓰고 딸인 웹툰 작가 엄유진이 그림을 그린 에세이 ‘행복한 철학자’도 ‘유퀴즈’를 계기로 2년 만에 다시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엄유진 작가가 ‘유퀴즈’에 출연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사연을 공개하면서 독자들의 구매가 이어졌다. ‘행복한 철학자’는 방송 직후 판매량이 약 4배(321.3%) 증가했다.
‘역주행 베스트셀러’ 중심엔 2030 여성들 | 역주행 베스트셀러 ‘행복한 철학자’ 표지. (사진=하늘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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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 베스트셀러’ 열풍의 중심엔 서점가의 새로운 ‘큰손’으로 자리매김한 2030 여성들이 있다. 독서에 대한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젊은 세대들이 신간은 물론 과거에 나온 책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 ‘모순’과 ‘급류’의 경우 교보문고 상반기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20대 독자 구매 비중이 각각 40.2%, 40.3%로 가장 많았다.
출판계 관계자는 “과거에 나온 책이지만, 강렬하고 감각적인 문장을 담고 있다는 점이 2030 독자들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진다”며 “소셜 미디어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한 책이 ‘역주행’하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