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과학기술 인재 확보 대책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김영오 서울대 공대 학장은 이같이 이공계 위기의 심각성을 학과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김영오 학장은 “R&D 예산 삭감에 의대 증원 문제까지 겹쳐 굉장히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하다”며 “올해 2학기 지표를 살펴보기 두려울 정도”라고 밝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고려대, 연세대 등 국내 최상위권 대학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KAIST도 신입 입학생의 약 15%가 이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령인구 감소, 의대 증원 여파, 해외 인재 유출이라는 삼중고에 이공계 위기가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공계 위기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우리나라 뿌리를 뒤흔들 수 있는 문제다. 기술패권 경쟁에 유럽과 중국은 과학자 모시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애초 학령인구 감소로 이공계 지원자 숫자가 줄어드는데다가 이공계에서 다시 의대로 유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공계에 지원하더라도 지역 인재는 수도권으로, 수도권에서 다시 해외로 가는 악순환도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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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우선 학생들 자체가 줄고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자료에 의하면 학령인구는 올해 234만4000명에서 오는 2040년 156만5000명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협회(IEA)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성취도(수학 3위, 과학 2위)는 높지만 자신감과 흥미도는 평균 이하(수학 57위, 과학 53위) 수준에 불과해 이공계에 대한 매력도도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학생연구자에 대한 교육적·경제적 지원과 과학기술인에 대한 보상체계가 부족했고, 진로에 대한 불안감도 이공계 진출을 저해하는 요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 자료에 의하면 국내 병·의원에서 월급을 받는 의사의 연간 임금소득이 약 2억5600만원이지만 과학기술원 교수의 평균 임금은 약 1억3500만원 수준으로 차이가 있다. 그마저도 이공계 학생들이 원하는 직업(교수, 연구원 등)과 일자리에 대한 격차까지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1만명의 이공계 박사 인재가 배출되지만, 이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1000개에 불과하다.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우수 학생의 이공계 기피와 이공계 학생, 신진연구자의 진로 고민은 질 좋은 연구개발 일자리 부족과 충분하지 못한 보상이 원인”이라며 “극심한 인구감소 추세로 양적 위기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되며, 첨단·전략기술 분야는 인재난을 겪는 등 질적 불일치 문제가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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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인재들을 양성하더라도 해외로 유출되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이공계 박사의 직무·직장 만족도는 67.5%에 그쳤고, 근로소득과 혜택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석학들의 정년퇴임 이후 국내에 연구기반이 사라지면 중국 등 해외로 가는 일도 흔한 사례가 됐다.
과학계에서는 새정부가 출범하는 만큼 이공계 학생 생애 전주기에 걸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공계 인재 유입·지원체계를 구축하고, 블록펀딩 방식으로 연구중심대학을 선정해 학생 선발부터 운용방식을 차별화하며 이공계 대학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초·중학교 학생부터 신진연구자까지 생애주기별로 지원체계를 강화해야 국가적인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향후 기초과학과 기반기술, 인재양성이 균형 있게 지원되고 육성이 뒷받침되어야 우리나라가 기술패권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진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절대적 위기에 처한 우리 이공계를 살리기 위한 골든타임을 절대 놓쳐선 안된다”며 “앞으로 관련 포럼을 열고, 과학기술계 중지를 모아 이공계 인재양성을 위한 정책과제들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