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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켜낸 콜롬비아 5000 용사들[공관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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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 기자I 2025.06.27 05:00:00

콜롬비아,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한 한국전쟁 파병국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연 인원 5000명 파병해
대사관, 보훈행사 개최…참전용사들 "韓 발전 기뻐"
6·25 발발 75년, 참전용사 기리며 기억해야

[이왕근 주콜롬비아대사]‘콜롬비아’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많은 사람이 마약, 내전, 커피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유래와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입에 익숙한 ‘아싸라비아 콜롬비아’가 생각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알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콜롬비아는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한 6·25전쟁 파병국이라는 사실이다.

이왕근 주콜롬비아대사(사진=외교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전면적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지구 반대편의 콜롬비아는 주저 없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시 콜롬비아는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연인원 5000명 이상의 장병을 파병했다.

1951년 5월 21일. 콜롬비아 청년 1086명은 미국 군함을 타고 조국을 떠났다. 26일간의 항해 끝에 태평양을 건너 부산항에 도착했다. 콜롬비아 대대(Batallon Colombia)는 흑운토령, 금성, 불모고지 등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한반도의 엄동설한으로 목숨을 잃은 분도 있다고 한다.

해군도 참전했다. 파디야(Padilla)호를 시작으로 총 3척의 군함이 한반도 인근 바다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파디야호는 카리브해 연안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카르타헤나에서 출항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기념해 2008년 카르타헤나 해군공원에 거북선 모형을 기증하기도 했다.

우리 대사관은 매년 보훈행사를 개최한다. 2023년에는 우리 해군 순항훈련단의 입항을 기념해 카르타헤나에서 보훈행사를 열었다. 무덥고 습한 날씨로 온몸에서 땀이 폭포처럼 흘러 속옷이 흥건히 젖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고령의 참전용사들은 행사 내내 흐트러짐이 없었다. 수십 년 전 파병 길에 올랐던 젊은 군인들의 기개는 여전히 카르타헤나에 있었다. 그 모습에 필자도 넥타이를 고쳐 매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참전용사를 한국에 초청하는 행사도 하고 있다. 한 분은 한국에 다녀오신 후 필자의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한국이 그토록 발전한 것을 보니 마치 내 자식이 잘된 것처럼 정말 기쁘다. 젊은 날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콜롬비아인이 한국을 경제성장의 모범적 사례로 이야기하며 우리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이 지킨 것은 조국의 희망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참전용사 중 많은 분이 세상을 떠났다. 후손들을 위한 다양한 보훈사업도 시행하고 있지만 콜롬비아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그분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지는 않을지 걱정될 때도 있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의 국민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대표작 ‘백년의 고독’에서 세대를 거친 망각이 가져오는 역사의 고독을 이야기했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75주년이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이 양국에서 계속 기억되길 바란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들의 100년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이왕근(왼쪽) 주콜롬비아대사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콜롬비아 참전용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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