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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필자가 처리한 사건 중에도, 유언장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은 유산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건 아버지 글씨가 아니에요.”, “치매 판정을 받은 시점 이후인데, 이걸 진정한 유언이라고 볼 수 있나요?” 등 유언의 효력을 두고 가족이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모습은, 생전에 화목했던 관계마저 파탄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많다. 상속인 상호간에 갈등과 불신으로 고인이 돌아가신 후에 서로 남남이 아니라 원수가 되고 만다. 이는 단지 가족 간의 정서적 문제에 그치지 않고, 법원에서 수년간 이어지는 소송으로 확대되며, 시간과 비용, 감정의 소모를 감당해야 하는 법적 리스크로 전이된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바로 ‘유언장 보관제도’다. 유언장을 사전에 공적인 기관에 보관함으로써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와 유언능력을 공식적으로 확인받고, 그 존재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의 유언보관제도는 독일 민법 제2248조에서 피신청인의 신청에 의해 법원에 보관하며 보관기관은 30년이다. 그리고 중앙유언등록부 제도를 마련해 관련 정보를 전산화하고 통합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2020년 7월 10일부터 유언서보관법을 시행하고 있다. 자필유언증서를 법무국에 유언서보관 신청을 하면, 유언서보관관이 자필유언증서 유언방식이 법에 맞는지 확인하고 보관하고 디스크에 기록한다. 유언자가 직접 유언서보관소에 출두해야 하고, 본인 확인 후에 유언자 이외에 유언서를 확인할 수 없다. 유언의 철회도 유언자 본인이 직접 출두해야 가능하다. 유언자가 사망하면 상속인 등이 유언서정보증명서의 교부를 청구할 수 있고, 유언자 사망 후 50년간 보관된다. 상속등기는 유언서정보증명서를 확인함으로써 검인절차 없이 신속히 진행될 수 있다. 유언서 보관수수료는 3900엔, 우리나라 돈으로 4만원 정도로 공정증서 작성비용보다 훨씬 싸다.
유언장 보관제도의 장점으로 네 가지를 제시해 볼 수 있다. 첫째, 법원이나 공적인 기관에서 유언서를 접수받고, 유언자가 직접 제출하는 과정에서 유언자의 인지능력 및 작성 시점을 확인할 수 있어서 유언자가 사망한 뒤에도 그 보관 사실과 문서의 진정성이 보장되므로, 위조나 변조에 대한 의혹이 근원적으로 차단된다.
둘째, 유언장을 보관하면, 유언자의 사망 후 보관기관은 그 사실을 확인하고 수증자에게 유언장 존재를 통지할 수 있어 수증자는 유언장의 존재를 몰라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할 수 있고, 유언서의 효력 발생도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다.
셋째, 현재는 유언장을 남기더라도 그 효력이나 보관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언장 보관제도가 도입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 이후의 재산처리를 계획하고 문서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넷째, 1인 가구, 고령 독거인의 증가 등으로 유산을 생전에 계획하고 지정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 유언장 보관제도는 노년기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도, 사후의 법적 안전장치를 함께 마련하는 이중의 효과를 지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공정증서 유언이 변호사의 도움을 통해 비교적 분쟁이 적은 유언 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공증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공증절차를 밟을 수 있는 경제적·물리적 여건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유언장 보관제도는 자필증서 유언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유언을 하는데 큰 부담 없이 확실한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다.
유언서보관이라는 것이 단순히 문서보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 이는 유언자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헌법적 권리 보장의 문제이며, 동시에 상속이라는 민사적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적 법치 구현의 실천이다. 법률가로서, 또 시민으로서 필자는 유언장이 단지 유족의 손에 의해 해석되는 문서가 아니라, 생전에 공적으로 성립을 인정받는 유언자의 진정한 유산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유언장 보관제도는 그 첫걸음이다.
■조용주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대전지법·인천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안다상속연구소장 △법무법인 안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