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영어로 된 화장품 용기에 한국어 의태어가 영어로 적혀 있다. 이 화장품 브랜드에서 출시한 고체 샴푸에는 ‘순수’라는 한글도 기재했다. 아마존 스페인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온도(ONDO) 뷰티 36.5’라는 브랜드의 제품들이다. 브랜드 소개서에는 “온도 뷰티 36.5는 바르셀로나에서 만든 한국 화장품 브랜드”라는 모순된 내용이 담겨 있다.
K뷰티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면서 이를 표방한 해외 브랜드들이 늘고 있다. K뷰티 브랜드지만 한국과 연관이 없거나 한국에선 판매하지 않는다. 아예 국내 브랜드를 모방하거나 위조한 제품을 공공연하게 판매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K뷰티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이에 따른 그늘이 드리워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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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업계에 따르면 독일 화장품 브랜드 ‘예쁘다’(Yepoda)는 K뷰티를 표방한 대표적인 사례다. 예쁘다는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진출한 K뷰티 브랜드지만 한국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지난 1월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이 브랜드가 밀라노 중앙역에 연 팝업스토어를 사례로 들어 K뷰티 열풍을 조명했다.
아예 국내 화장품 브랜드를 베낀 위조 제품도 판을 치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인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뿐만 아니라 미국 아마존, 이베이 등에서는 국내 브랜드와 외관 디자인을 유사하게 만든 가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에이피알(278470), 조선미녀, 티르티르, 아누아, 스킨1004 등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국내 브랜드들이 주요 피해 대상이다.
위조 제품은 패키지와 용기도 정품과 유사하게 제작해 소비자들은 정품과 가품 구분이 어렵다. 에이피알의 ‘콜라겐 나이트 랩핑 마스크’ 위조품의 경우 ‘콜라겐’ 대신 ‘골라겐’이라고 적혀 있거나 용량 표시가 ‘㎖’가 아닌 ‘mi’로 표기되는 등 오타 및 맞춤법 오류가 발견됐다.
특히 K뷰티의 성장세에 따라 위조 제품은 증가하는 추세다. 지식재산권(IP) 보호전문 인공지능(AI) 기업 마크비전이 지난해 118개국 1500개 이상의 화장품 판매 플랫폼을 조사한 결과 K뷰티 위조 의심 제품은 111만 5816건 발견됐다. 이 건수는 2022년 21만 1963건, 2023년 99만 7121건 등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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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 제품이 성행하면서 K뷰티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실질적인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K뷰티 열풍을 이끄는 브랜드 운영사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이어서 위조 제품 대응에 투입할 수 있는 비용과 인력 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마크비전 조사 결과 K뷰티 위조 의심 제품 중 피해 기업이 플랫폼에 신고해 제재 조치를 취한 건 7.9%(8만 8392건)에 불과했다.
비건 뷰티 브랜드 ‘퓨리토 서울’을 운영하는 하이네이처의 조인제 대표는 “매출의 99%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위조 제품이 많이 나온다”며 “자사 브랜드와 외관만 같은 위조 제품을 구매 후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며 소비자가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중소기업 차원에서 대응하는 게 쉽지 않아 정부 차원에서 공동 대응을 지원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허청은 수출 기업이 해외에서 상표·디자인 등 IP 분쟁에 적기 대비·대응할 수 있도록 ‘K브랜드 분쟁 대응 전략’을 제공하고 있다. 해외 이커머스에서 위조 제품을 모니터링하고 판매 게시글을 삭제하는 등 위조 제품 차단 지원에도 나서는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의 기술침해를 막기 위해 법률 지원, 기술보호 통합상담, 기술보호 정책보험 등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화장품 산업에 특화한 기술 보호 제도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