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최근 이데일리와 만나 6·3 대통령선거 후 출범할 새 정부에 전면적인 규제개혁을 주문했다.
최 교수는 ‘규제학의 대가’, ‘규제개혁의 전도사’로 불린다. 김대중정부에서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이명박정부에서 규제개혁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진보·보수정권을 넘나들며 중용돼 규제개혁 성과를 냈다.
최 교수는 글로벌 외환위기 시절 직접 제안해 관철한 ‘한시적 규제유예’, ‘규제일몰제’를 새 정부에서 다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의 경제 상황이 그만큼 위태로운데다 규제가 신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단 이유에서다. 규제는 ‘숨겨진 세금’인 만큼 규제를 개혁할수록 국민 편익이 늘어난다고도 했다.
최 교수는 ‘나쁜 규제’일수록 이해관계자들이 얽히고설켜 규제를 풀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규제개혁을 위한 예산은 한해 200억~300억원에 불과해 관련 예산과 인력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최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좋은 규제, 나쁜 규제는 어떻게 다른가.
△좋은 규제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증가시키고, 비용보다 혜택이 더 큰 규제다. 예측가능성은 높고 불확실성은 없어야 한다. 안전·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되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고 다른 규제와 유사하거나 중복되지 않아야 한다.
-한국의 규제 수준을 어찌 평가하는가.
△질 낮고 악성이다. 가깝게는 금융권에 가보라. 금융소비자 보호한답시고 수도 없이 서명을 요구하지만 실제로 보호가 되는가. 미국은 해마다 규제로 인한 국민경제 비용을 계산하는데 최근에도 GDP의 10% 선으로 나타난다. 규제 때문에 드는 비용에서 편익을 뺀 순규제비용이 미국도 이렇게나 크다. 한국은 미국보다 규제가 많고 비합리적이라 GDP의 12%가량 될 것으로 추정한다. 작년 GDP가 2549조원이니 300조원쯤 되는 셈이다. 한해 국가 예산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 규제의 질적 수준이 낮은 이유는 뭐라고 보나.
△정부는 돈과 말로 일을 한다. 돈은 재정이고 말은 규제다. 그런데 엉뚱한 데 쓰는 재정이 많다 보니 돈으로 해야 할 일을 규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안전운전을 위해 속도를 규제하는데 규제만 할 게 아니라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도록 돈을 들여서 도로를 고쳐야 한다. 선진국은 세금이 많고 규제가 적지만, 우리나라는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규제를 많이 하니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세수가 줄어 또 규제로만 해결하려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국민들도 마치 아이가 부모에 기대듯 사건·사고가 터지면 정부 탓을 하고 정부에 규제강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규제에 드는 비용은 결국 국민 부담이다.
-전임 정부들의 규제개혁 성과를 평가한다면
△보수는 규제를 완화하고 진보는 강화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김대중정부는 외환위기(IMF) 사태에서 규제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기존 규제의 절반을 없앴고 노무현정부도 규제를 많이 풀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규제개혁한다고 끝장토론을 했지만 성과가 적었고, 윤석열정부는 국무총리실에 규제혁신추진단을 만들었지만 마찬가지다.
모두가 규제개혁을 말하지만 너무 쉽게들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규제개혁은 결코 쉽지 않다. 나쁜 규제일수록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쉽게 풀지 못한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의무휴업일 규제는 유통기업과 노조, 중소상인, 소비자가 얽혀 10년 넘게 못 풀었다.
-새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경제가 위기잖나. 금융위기를 맞은 이명박정부 때 그랬듯이 전면적인 한시적 규제유예, 규제일몰제를 시행해야 한다. 2~3년 기간을 두고 기업들이 애로를 겪는 규제를 확 풀어주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계속 풀어주는 것이다. 또 규개위 심사를 거쳐 규제를 만들더라도 일몰제를 적용해서 규제를 한시적으로 시행해본 뒤 효과를 검증해 존폐 여부를 결정하자는 얘기다.
이명박정부에서 규개위원장할 때에 한시적 규제유예를 제안하자 반발도 많았고, 최저임금제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건 손대지 못했다. 그럼에도 건폐율·용적률 규제를 풀어 수도권 공장 증설이 원활해지는 등 경제회복에 도움이 됐다.
특히 우리 경제의 먹거리인 자율주행 등 신기술·신산업 규제를 대폭 풀어줘야 한다. 자율주행이 야기할 수 있는 사고 예방보다 위험 대처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
예산과 인력도 필요하다. 대형마트·SSM 영업규제가 대구, 청주 등 지자체부터 풀리게 된 데엔 대구시가 의뢰했던 용역 보고서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휴일 유동인구가 줄어 중소상인도 손해라는 걸 입증해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냈다. 수억원을 들인 비용편익분석 결과가 나오니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규제를 풀려면 이렇게 돈과 인력을 들여 규제의 비효율성을 검증해야 한다. 하지만 규제개혁에 쏟는 예산은 한해 200억~3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규제비용의 1%에도 못 미치는 만큼 투자를 늘려야 한다.
최병선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하버드대 정책학 석사·박사 △규제개혁위원장 △한국규제학회 초대 회장 △한국정책학회장 △감사원 정책자문위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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