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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 백화점 참사는 개장한 지 6년밖에 되지 않은 신식 백화점이었기에 붕괴에 따른 국민들의 충격은 더 심했다. 진상 조사를 시작하자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위기를 집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삼풍 백화점은 부실 설계와 부실 시공 뿐 아니라, 뇌물과 비자금, 각종 비리로 얽힌 총체였던 것이다. 이 와중에 당시 삼풍건설그룹의 이준 회장은 한 언론을 향해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손님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것이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라고 말했다. ‘천민 자본주의’적 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붕괴가 일어난다고 해도 충분히 ‘참사’를 막을 시간도 있었다. 삼풍 백화점 붕괴는 그날 오전부터 조짐이 보였다. 그날 8시부터는 건물 곳곳에서 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5층 식당가의 천장 일부가 내려앉았다. 무서웠던 직원들이 백화점에 신고를 했지만 경영진은 천장이 무너진 쪽만 영업을 중단시키고 다른 곳 영업을 이어갔다.
오전 10시에 균열이 더 심해지자 백화점 측에서는 가스 밸브를 잠그고 영업을 했고, 11시에는 백화점의 에어컨 가동을 중단시켰다. 진동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점점 심해지는 붕괴 조짐에 손님들은 밖으로 대피했고, 일부 직원도 철수했다. 오후부터는 저녁 장을 보기 위해 인근 아파트 주부들이 몰려들었지만 출입 통제는 되지 않았다. 수천여 명의 사람들은 백화점 내부에서 쇼핑을 즐기다가, 붕괴 직전인 오후 5시 50분부터 건물이 기울자 자력으로 대피를 했다.
붕괴 원인은 부실 설계와 부실 시공이었다. 삼풍에서는 무단으로 설계를 변경해 5층을 증축하고, 200t 규모의 냉각탑을 올렸다. 이 불법 증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무게를 견디지 못한 4층, 5층 구조물이 먼저 무너져내렸고 이는 건물의 전체 붕괴로 이어졌다. 불법 증축 과정에서는 뇌물과 비자금, 정경유착 문제가 뒤섞여 있었다.
구조 과정도 총체적 난국이었다. 제대로 된 지휘체계가 없어 잔해 아래 깔린 수백여 명의 사람들은 ‘골든 타임’을 놓치고 죽어갔다. 잔해 아래 갇힌 이들 중 구조된 사람은 43명에 불과했다.
당시 붕괴 현장에서 스스로 빠져나온 생존자 이선민씨(49)는 백화점 지하 1층에서 짐을 맡아주는 일당 3만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이씨의 나이는 스무 살. 온몸에 상처를 입고 건물에서 빠져나온 이씨는 지난 2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에서 “나는 한 번도 스무 살에 살아남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이제 오십이다. 미쳤다”고 심경을 밝혔다. 30년이 지난 세월까지 가슴 깊은 상처로 남은 참사였던 것이다.
그는 다른 게시글에서도 “6월 29일이 삼풍사고 30주기다”라며 “재난 재해 참사 대표성을 가진 당사자로써 그 동안 많은 매체와 인터뷰 했는데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후에도 사고는 계속 일어났으니”라고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