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미국in]트럼프發 反이민정책…"일자리 늘어" Vs "회복 직격탄"

by이준기 기자
2020.06.24 21:00:00

트럼프 행정부 "미국인에 52만5000개 일자리 창출"
전문가들 "美노동자, 외국인 기술 등 대체 불가능"
IT기업 뿐 아닌 경제 곳곳에 악영향…"끔찍한 손해"
2035년 노동력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이민 절실
트럼프 11월 美대선 앞두고 지지층 결집 행보 해석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경제적인 근거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인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올해 말까지 정보기술(IT)·비농업 등 특정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취업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가운데 미 워싱턴의 중도·보수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CATO Institute)의 이민정책 전문가 데이비드 비어가 날린 일갈이다. “52만5000여개의 일자리를 생겨날 것”이라는 트럼프 정부의 주장과 달리, 비어는 23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이 행정명령은 미국의 경기회복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어의 경고는 명확하다. “미 기업들이 필요한 ‘전문화된’ 외국인 근로자들이 가진 기술·경험을 미 노동자가 대체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비어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미 경제의 곳곳에서 미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다른 일자리에 대한 수요를 창출해왔다”며 “이민 제한은 실업률을 낮추지도 못할 뿐 더러 이 기간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 기업들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미 인터넷매체 복스는 “이번 행정명령은 노동력의 합법적인 격차에 직면한 고용주뿐만 아니라 그들이 고용하는 미국인들에게도 불확실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먼저 실리콘밸리의 구글·페이스북·애플 등 외국인 기술 인력(H-1B 비자 근로자)을 대거 고용하는 IT 기업들이 받는 타격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애플의 팀 쿡,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 대형 기술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이날 일제히 성명을 내어 “이번 선포에 크게 실망했다” “미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험에 처하게 할 것” 등의 강도 높은 단어를 써가며 반발한 배경이다.



비단, IT 기업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미 유일 공영방송 PBS는 “이미 미국 내 많은 지역 사회는 레스토랑, 호텔, 식료품 가게 등과 같은 이민자 소유의 사업으로부터 이익을 얻는다”고 지적했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19년말 기준 미 노동력의 17%는 이민자에게서 나왔는데, 대부분은 노인 돌봄, 육아 등 미국인이 원하지 않은 일자리였다.

사진=AFP
미국기업가정신연구소(CAE)의 존 디어리 회장은 AP통신에 “이번 명령은 ‘미국에 오지 말라, 우리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매우 강력한 부정적 시그널을 전 세계에 보낸 셈”이라며 “이건 끔찍한 손해”라고 했다. 미국 최대 기업 이익단체인 미 상공회의소의 토머스 도너휴 회장은 “엔지니어, 경영인, IT 전문가, 의사, 간호사 등에게 ‘환영하지 않는다’는 표지판을 세운 것은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를 멈추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학의 지오반니 페리 경제학 교수는 “대부분 경제학자는 이민자들이 노동력의 매우 큰 부분임에도, 미국의 일자리나 미국의 임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 기업가정신연구소(CAE)가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2017년 미국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미 주요 기업의 약 43%는 이민자 1세대 또는 2세대에 의해 창업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기술(IT) 업종에선 46%에 달한다. ‘일자리 창출’의 토대였던 셈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이민자들의 기업가 정신은 토착민의 약 2배에 달한다고 분석한다. 다문화 경험이 그들의 역량을 증대시키고 나아가 더욱 개방적이 게 함으로써 새 상품과 서비스,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만들어낸다고 것이다. 이민자 창업 기업이 토착민 기업보다 고용증가 측면에서도 더 좋은 성과를 거뒀다는 게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분석이다.

사실 인구학적으로 봤을 때도 미국은 ‘이민’이 절실한 나라 중 하나다. 미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2017년 내놓은 자료를 보면,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고 미국의 출산율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떨어질 경우 미국의 노동력은 2015년 1억6560만명에서 2035년 1억732만명으로 3분의 1가량으로 확 쪼그라든다. 이를 두고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노동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회보장제도 등의 프로그램은 자금 압박에 시달릴 것”이라며 “경제 성장은 거의 위축되거나 정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풀이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반(反) 이민정책을 강하게 펴는 배경에는 오는 11월 미 대선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정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경제가 직격탄을 맞자 외국인 대신 자국민의 고용을 높이기 위한 조처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겠다는 의도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