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미국in]워싱턴 '진짜' 베테랑이 돌아온다

by이준기 기자
2020.11.23 19:30:00

바이든, 24일 초대 국무장관에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 지명 예정
트럼프 '고립주의' 종식 해석…NYT "각국 지도자들, 안도하게 할 것"
사실상 '2인자' 역할…韓 등 동맹 중시하되, 對中·對北 강경책 택할 듯
일각 '포용적 스타일+주먹구구식 결정' 우려…당내 분란 일으킬 수도

사진=AFP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토니는 미국의 가치를 믿었다. 또 미국의 정책이 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했다.”

내년 1월20일 출범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는 토니 블링컨(58·사진 위)에 대한 어릴 적 친구의 회고다. 블링컨의 고교동창이자 국제위기그룹 대표인 로버트 말리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블링컨을 ‘워싱턴의 베테랑’이라고 표현하며 “미국의 (대외적) 신뢰를 회복시킬 완벽한 배경을 가진 인물”이라고 했다.

고립주의 탈피…“각국 지도자들, 안도”

블링컨은 전형적인 외교관 집안에서 자랐다. 1962년 뉴욕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블링컨은 헝가리와 벨기에 대사를 지낸 부친과 삼촌 밑에서 외교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을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블링컨은 당시에도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역할 등 외교 문제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말리는 “토니는 파리의 미국인이었다”고 회고했다.

블링컨의 등장은 지난 4년간 지속했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발(發) 고립주의 탈피의 신호탄으로 읽히곤 한다. 닉 번스 전 국무차관은 “블링컨의 네트워크는 믿을 수 없는 범위였으며, 그의 놀라운 경험과 결합돼 있었다”며 향후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위상 약화 회복에 나설 것으로 봤다. 더 나아가 번스 전 차관은 “블링컨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8년간 모든 중요한 회의에 참석했다”며 이너서클의 핵심이었음을 시사했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와 1993년 국무부 유럽국에서 근무를 시작한 블링컨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2013~2015년), 국무부 부장관(2015~2017년)을 지낸 바 있다. 바이든 당선인과는 상원 외교위 수석전문위원 시절 첫 대면한 뒤 20년 가까이 동고동락해온 사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돌발적 외교정책은 이제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의 폭넓은 외교업무 경험은 미국 외교관들과 전 세계 지도자들을 안도하게 만들 것”이라고 썼다.

버락 오바마(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과 회의 중인 블링컨. 사진=AFP
◇對北·對中 강경파 분류…‘동맹 중시’




미 국무장관은 내각 서열 1위이자,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하원의장·상원 임시의장에 이은 권력 승계 서열 4위 자리다. 각종 외교·안보 현안을 총괄하는 만큼 실질적인 2인자로 봐도 무방하다. 한국과 직결된 미·중 관계, 대북(對北) 정책 등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우리로선 재무장관과 함께 가장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자리다.

블링컨은 대북(對北)·대중(對中) 강경파로 분류된다. 그는 2017년 NYT 기고에서 대북문제와 관련, 군사적 조처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국제사회에서의 강력한 대북압박을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역할론을 부각하며 석탄 등에 대한 강력한 금수조처로 북한의 핵개발 돈줄을 마르게 해야 한다고 언급했었다. 그는 지난 9월 중국과의 관계설정에 대해 “세계가 기술 민주국가와 기술 독재국가 간 단층선을 따라 일정 정도 분열되고 있다”며 민주국가 간 협력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중국을 ‘1 : 1’로 압박하기보단, 동맹과의 협력 강화로 이를 돌파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실제로 블링컨은 최근 ‘인텔리전스 매터스’ 팟캐스트에서 “러시아·중국 등 독재국가를 활용한 트럼프 행정부는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며 “이를 막기 위해 동맹을 재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당내 진보·중도 간 불화의 신호탄?

FT에 따르면 블링컨은 워싱턴 특유의 경직된 위계질서를 파괴해온 ‘포용적 스타일’이라고 한다. 각종 회의 석상에서 선·후배 가릴 것 없이 좋은 의견은 적극 수용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핵심 이념이 불투명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바이든의 전 보좌관은 FT에 “그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다 보니, 그의 외교정책을 잘 읽지 못했다”고 했다. 또 회의를 너무 많이 주재하고, 결정을 자주 미룬다는 점도 도마에 오른다고 FT는 전했다.

블링컨 발탁으로 민주당 내 진보-중도 진영 간 갈등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사실 국무장관에는 수전 라이스 전 NSC 보좌관이 더 앞서 가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할 공산이 큰 상원이 라이스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점에서 블링컨은 ‘인준’을 위한 카드 아니냐는 관측도 적잖다. 2012년 리비아 벵가지 미 영사관 테러 공격이 ‘우발적’이라고 언급한 라이스는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 국무장관 후보자에 올랐다가 공화당의 반발로 낙마한 전례가 있다.

그러나 당내 진보진영은 라이스 전 보좌관이 힘들다면 블링컨이 아닌, 흑인 여성인 바바라 리 하원의원을 지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블링컨 발탁을 시작으로 바이든 당선이 당내 진보진영과 공화당 사이 소위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