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만 다시 법정 선 형제복지원…"사법 과오 바로 잡아야"

by남궁민관 기자
2020.10.15 17:10:02

1980년대 초유의 인권유린 사태 형제복지원 사건
원장 故 박인근씨 특수감금 무죄 단 징역 2년 6월
문무일 前 검찰총장 비상상고 신청, 2년 만 공개재판
檢 "피해자 대한 예의이자 사회 정의 세우기 위한 것"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약 3만8000명이 수용됐던 전국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 부산 형제복지원에서는 사실 대부분 부랑인이 아님에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노역과 구타를 자행해 최소 571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대표적인 인권 유린사태로 ‘한국판 아우슈비츠’로도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원장 고(故) 박인근씨가 1987년 기소 이후 일곱 번의 재판 끝에 특수감금은 무죄, 업무상 횡령만 인정돼 단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는 데 그치며 현재까지 사법부의 뼈아픈 과오로 남아있다.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피해자들에게 재판 설명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5일 대법원은 이같은 과오를 바로잡고자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심 공개재판을 열었다. 박씨 확정 판결 이후 31년여만이자,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지난 2018년 11월 비상상고를 신청한 이후 2년여 만 이뤄진 것이다.

비상상고란 형사사건 확정판결에서 법령 위반이 발견된 경우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재판을 다시 해달라고 신청할 수 있는 비상구제 절차로,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과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기 위한 취지다.

형사소송법상 비상상고심 결과 법령 위반이 인정돼 원심이 파기되더라도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주문에는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향후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은 물론 손해배상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먼저 검찰은 당시 법원이 형법 20조를 잘못 해석·적용해 이를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 무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형법 20조에는 ‘법령에 의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형제복지원은 당시 내부무 훈령에 따라 피해자들을 수용해 벌할 수 없다고 본 대법원 판단을 꼬집은 것.



고경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은 “형법 20조의 법령에 의한 행위는 합법·합헌에 따른 것을 의미하는데 내무부 훈령은 위헌·위법하다”며 “내무부 훈령은 부랑인이 도시질서를 위협하는 모든 사람이라 했는데 지나치게 광범휘하고 모호하며, 이렇게 규정된 피해자들을 기한없이 수용 가능해 과잉금지에도 위배된다. 수용과정에서는 피해자의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점도 적법절차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 부장은 “피해자들에 대한 특수감금이 정당행위가 아니었음을 명확하게 선고함으로써 피해자였음을 천명하고 수사와 재판상의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평생 고통 속에 살아온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사회 정의를 세우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생존 피해자들의 대리인이자 이날 참고인 신분으로 공개재판에 참석한 박준영 변호사는 법리적 문제에 앞서 피해자들의 아픔과 투쟁의 시간을 공유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박 변호사는 “1987년 5월 말 형제복지원이 폐쇄되면서 3000명이 넘는 수용자들은 어떠한 사과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뿔뿔히 흩어졌다”며 “일부는 다른 시설로 보내졌고 간판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갇혀있었고 새 시설에서 강제노역과 구타에 시달리다 사망했다”고 호소했다.

이어 “사회로 나온 사람들은 입을 닫았다. 부랑인에 대한 낙인과 편견이 강했기 때문”이라며 “지워진 피해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고, 일부는 지금도 여전히 장애인수용시설, 정신병원, 노숙인시설 어딘가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픔에 공감하겠다’는 취임사를 남긴 대법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면서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새롭게 쓰는 건 불가능하지만, 과거에 행해진 것을 현재에 말하는 것은 미래의 행위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현재 형제복지원을 어떻게 기억하고 규명하는지, 그리고 피해 생존자를 위로하는지에 따라 새로운 기억과 미래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비상상고심은 단심제로 운영되며, 재판부는 추가 검토 후 조만간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