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판결 제사상에서 받게 돼 안타까워"

by전재욱 기자
2017.02.15 17:58:01

대법 판결이끈 박영립 한센인권변호단장 인터뷰
"열에 한 명은 사망"…총 원고 540명中 약 50명
판결 늦어지는 동안 위자료에 연 20% 이자…국고낭비
2천만원 위자료 인정 판결 형평성 해결 관건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법원 판결이 늦어서 피해자의 고통이 늘어졌고, 위자료에 붙은 이자를 키워서 국고까지 낭비했다.”

대법원은 15일 한센인 19인이 낸 소송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이로써 단종 3000만원·낙태 4000만원의 위자료가 지급된다. 이 소식이 전해진 지금 소록도는 축제 분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원고 중 한 명은 영영 소식을 듣지 못한다. 판결을 기다리다가 지난해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이 소송을 이끌어온 박영립 한센인권변호단장(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지만, 너무 늦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소송에 참여한 한센인 피해자 열에 한 명은 판결을 기다리다가 사망했다”며 “법원이 ‘제사상 판결’을 내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사건 총 원고는 약 540명이다. 적어도 50명은 대법원 판결 전에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그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면서 “국가는 위자료에 이자까지 붙여서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첫 1심 판결이 난 2014년 4월29일부터 이날까지 연 20%의 이자가 붙었기 때문이다. 낙태 피해자 기준으로 대략 3년 치를 계산하면, 원금 4000만원에 이자만 2400만원이 추가된다. 위자료를 못 받아서 이자가 붙고 있는 원고가 500명이 넘는다. 엄연한 세금 낭비다.



법원이 판결을 미룬 탓이 크지만, 국가가 애초 판결에 승복했으면 됐을 일이다. 5건 제기된 소송에서 법원은 모두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국가는 번번이 항소했다. 박 단장은 “일본은 일제 강점기 한국인 한센인 피해자에게까지 보상했다”며 “정작 한국은 자국민에 대한 피해회복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피해가 고르게 회복될지 관건이다. 단종과 낙태 피해자에게 일괄 2000만원을 위자료로 인정한 판결 4건이 대법원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원래 1심에서 3000만원(단종)과 4000만원(낙태)이 났지만, 2심에서 모두 감액됐다. 그대로 확정되면 3000만원과 4000만원의 위자료를 받은 사건과 형평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의 차별이 만연했던 시기에 유사한 이유로, 비슷한 고통을 입은, 일단의 피해자들 사이에 다시 한번 차별이 생기는 것이다. 피해회복에 차별이 발생할지는 법원에 달렸다. 이날 대법원이 한센인 비극의 원인을 사회의 차별로 인정한 터에 지켜볼 일이다. 박 단장은 “법원이 지나치게 국가 곳간을 걱정해서 내린 대표적인 판결이 2000만원 사건”이라며 “국가를 견제해야 할 법원이 오히려 국가에 쏠리는 듯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했다.

대법원이 15일 한센인 강제 단종낙태에 대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한 직후 소송 대리인단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