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병팔이’ 우려…과잉 의료화 위험하다”

by노재웅 기자
2019.04.29 17:10:47

29일, 게임 질병코드화 반대 ‘게임과학포럼’ 개최
이경민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주제발표서 날선 비판

이경민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게임과학포럼 주최로 열린 ‘제2회 태그톡, 게임장애 원인인가 결과인가’ 간담회에 참석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노재웅 기자
[이데일리 노재웅 기자] “과잉 의료화를 두고 건강 불안 야기와 ‘병팔이(병을 만들어 약을 파는 자)’라는 비판은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이제는 그러한 화두가 게임으로 옮겨오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이경민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게임과학포럼 주최로 열린 ‘제2회 태그톡, 게임장애 원인인가 결과인가’ 간담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는 게임 중독 질병코드화를 담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 등재와 관련해 동조 입장이 대부분인 의학계 내부에서부터 나온 자성 섞인 비판의 목소리여서 더욱 주목된다.

게임과학포럼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이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WHO의 질병코드 설정은 게임을 과용하는 사람이 많으니 체계적인 분류와 명확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원인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며 “이를 두고 질병코드가 등재됐으니 (게임 과용을) 질병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을 넘어 음험한 음모”라고 강조했다.

아직 원인을 확정하지 못하고 과학적 근거도 빈약한 상태에서 게임의 과용과 관련한 문제를 ‘질병’으로 확정 지으려는 WHO와 일부 의료계 집단에 대한 날 선 비판으로 풀이된다.

이 교수는 특히 국내 의료 현실을 고려할 때, 게임 과용에 관련한 행동 문제를 질병으로 분류하면 일어나게 될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국내 보험체계상 비보험은 수가가 높다”며 “이 때문에 자기공명영상(MRI)을 코드화하는 걸 반대하는 의료인도 존재한다. 게임장애의 질병코드화 이후 적절한 보험이 인가되기 전까지 비보험으로 분류된 시기에 인센티브를 노려 악용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의료인이 게임 질병코드를 왜곡해 문제 행동을 보이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오용할 가능성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게임을 오래 즐기는 학생 중 일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실제 원인은 우울증이나 학업 스트레스일 수도 있는데 이를 게임중독으로 확정하면 부모나 교사 등 보호자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동시에 의료인은 보호자의 거부감을 피하면서 손쉽게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의약학계에서만 유독 게임 중독의 질병코드화에 찬성하는 연구 논문 발표가 많은 점과 근거 없이 포장된 전문 지식을 그대로 옮기는 언론의 행태에 대한 반성의 자세도 촉구했다.

실제 이날 함께 간담회에 참석한 윤태진 연세대 교수의 주제발표에 따르면 게임 중독의 질병코드화와 관련한 전 세계 논문 674건 중 가장 많은 91건이 한국 의약학 분야에서 발표됐으며, 이들 대부분이 게임 중독 자체를 ‘일단 전제하거나 동의한 상태에서’ 진행한 연구들이다. 또 지난 20년간 게임과 관련해 게재된 신문 사설 40건 중 36건이 게임에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운 내용이었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많은 의료인이나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전문화의 맹점에 빠져 있다”며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권위를 남용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확장, 게임에 관한 연구에 대해서도 다 아는 것처럼 근거 없는 전문지식을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부정적 코멘트가 언론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과학자로서, 또 의학자로서 여러 연구자들이 모여 게임의 긍정적인 요인을 강화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자 만든 것이 게임과학포럼”이라며 “앞으로도 국내 의료계나 여러 전문 분야에서 많은 성찰과 노력을 통해 변화하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