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압박-이용자 외면 사이 끼인 암호화폐 거래소 딜레마

by이재운 기자
2018.09.17 15:43:10

실명계좌 전환율 40% 불과..캠페인에도 요지부동
은행 "금융당국 규제 있으니 빨리 개선해라" 압박
이용자 "가입시 인증했는데" 불만..시황악화도 작용
靑의 억제압박 기조 반영된 움직임이란 시각도 팽배

코인원 공지사항 화면 캡처
[이데일리 이재운 기자]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기존 회원들의 실명인증 계좌 전환을 위해 원화 출금을 제한하는 초강수를 꺼냈다. 금융권의 압박에 전환을 독려하고 있지만, 시황 악화로 위축된 투자 심리로 관심이 떨어진 탓에 딜레마에 빠졌다.

17일 암호화폐 거래소 업계에 따르면 농협은행과 계약을 맺은 빗썸과 코인원은 최근 공지를 통해 다음달부터 실명인증 계좌로 전환하지 않은 이용자의 원화 출금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그 동안 실명인증계좌 전환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이벤트 등 유인책을 써왔지만 신통치 않다는 내부 판단에 따른 조치다. 빗썸의 경우 기존회원의 전환율은 40%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는 농협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법정통화(FIAT)인 원(₩)화 입출금이 가능한 거래소는 입출금을 위해 특정 은행과 계약을 맺고 사업을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금융사는 자금세탁 방지나 불법거래 차단을 위해 실명 인증 등 각종 규제사항을 거래소에 요구한다.

업계에 따르면 농협은 최근 거래소 업체들과 재계약하며 실명 전환 비율 상승이 더딘 점을 지적하며 원화 출금을 제한하라고 통보했다. 금융 당국이 실명 인증이 되지 않은 계좌로 거래가 이뤄지는 점에 대해 계속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빗썸은 다음달 1일 개인 회원, 다음달 15일 기업 회원 중 실명 미전환 이용자의 출금을 제한한다. 코인원도 다음달 15일 해당 회원들의 출금을 제한한다고 안내했다.



업비트와 계약을 맺은 기업은행도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 측에 계속 실명전환 비율을 높이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련 조치를 검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른 거래소들 역시 실명 전환율 높이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간 실명 전환 회원에 대한 사은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와 캠페인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탓이다.

실명계좌 전환이 더딘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우선 기존 회원들이 ‘이미 실명인증을 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형 거래소를 중심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미 본인의 휴대전화와 은행 계좌를 이용한 실명인증을 시행해야만 입금이 가능하게 조치를 했고, 이 때문에 추가로 실명인증을 해야한다는 상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출금 제한 조치라는 강수를 거래소들이 꺼내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는 시황 악화에 따른 투자 심리 위축에 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계약 은행에 계좌가 없는 기존 이용자의 경우 추가로 계좌를 개설하면서까지 침체된 현 상황에 추가 투자할 이유가 없고, 이 때문에 실명인증 전환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비트의 경우 한때 하루 거래량이 12조원 가량이었으나 현재는 5000억원 이하로 내려간 상태다. 비트코인 시세도 고점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고, 다른 암호화폐(알트코인)는 더 큰 하락폭을 보인 상황에서 계좌를 새로 열고 실명인증을 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를 옥죄는 기조가 반영됐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현재 기업은행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업비트와 재계약은 이어가면서도 신규가입자 계좌개설을 미루고 있고, 농협도 빗썸과 재계약 논의 과정에서 기존에는 지급하던 이자 수익을 갑자기 지급하지 않겠다고 나서면서 재계약 논의가 난항을 겪었다.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규 계좌 개설을 위해 기업은행과 계속 논의를 하고 있지만, 우리로서는 명확한 이유를 알기 어렵다”며 “거래소들은 은행이 요구하는 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으며 정부 규제에 부합하도록 다양한 노력을 계속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