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0대 여성 절반 “한국 패션 참고”…전성기 맞은 한일 문화교류

by김형욱 기자
2017.07.17 18:49:53

2003년 욘사마 2010년 소녀시대 이은 세 번째 한류 열풍
10대 여성 SNS 통해 실시간 전파…''혐한'' 입지 낮아져
아사히 국내 수입맥주시장 석권…소설·만화도 인기 꾸준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일본 10대 여성을 중심으로 문화 콘텐츠와 화장품을 아우르는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 맥주 소비와 일본 여행이 크게 늘며 바야흐로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가 전성기를 맞는 모양새다. 일본 유력 경제지인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은 지난 16일 현 열풍의 원인과 앞선 한류 열풍과의 차이점을 심층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닛케이는 일본 내 최근 한류 열풍은 10대 여중고생이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프리마켓(flea market) 기업 ‘플리루’가 17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본인의 패션에 참고하는 나라’를 조사한 결과 20대의 26%, 10대의 48%가 한국이라고 답했다. 조사 대상인 11개국 중 1위다. 미국이나 프랑스도 제친 것이다. 한류 관련 뉴스를 소개하는 일본어 사이트 ‘케이스타일’의 월 방문자 수는 약 360만명으로 3년 전보다 40% 늘었다. 또 전체의 40% 가까이 10대였다.

케이팝도 일본 열도를 뒤흔들고 있다. 일본 음악정보서비스 기업 라이브팬즈(Livefans)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내 관객 동원 수 1위 가수·그룹은 YG 소속 그룹 ‘빅뱅’이었다. 일본 내에서 지난 한 해에만 약 180만명이 빅뱅 공연을 봤다. 빅뱅을 비롯해 관객 동원 수 상위 30개 가수(그룹) 중 다섯 그룹이 한국이었다. 최근엔 ‘방탄소년단’의 앨범 ‘피, 땀, 눈물’이 올 5월 발매 첫주에만 24만장 판매됐다. 일본 주간 앨범 판매 1위다. ‘도깨비’ 같은 한류 드라마도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은 한국 드라마 소비의 약 20%를 차지하는 중국에 버금가는 시장이란 게 닛케이의 설명이다.

한류 관련 뉴스를 소개하는 일본어 사이트 ‘케이스타일’ 홈페이지


화장품도 인기다. 일본이 지난해 수입한 한국 화장품은 총 146억엔(1460억원)어치였다. 국가별로 5위다. 전년보다 약 50% 늘었다. 상승률로는 단연 최고다. 닛케이는 “미국·유럽이 주도한 수입 화장품 시장에 한국 화장품이 밀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젊은이 패션의 중심지인 도쿄 하라주쿠(原宿) 다케시타(竹下) 거리 중심에는 각각 지난해 12월과 올 5월에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에뛰드하우스’와 패션 브랜드 ‘스타일난다’ 매장이 나란히 입점했다. 에뛰드하우스는 연내 일본 내 매장을 2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마츠이 리나(松井理奈) 에뛰드하우스 사업부장은 “화장을 놀이처럼 즐기자는 콘셉트가 중고생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의 대학생 오사와 마리에(大澤眞理惠·18)는 “한국 화장품은 ‘눈썹 틴트’처럼 이전에 없었던 제품도 있어 놀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눈썹 틴트란 붙였다 떼내는 것만으로도 눈썹을 그릴 수 있는 일종의 젤이다.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온 시노하라 아유미(篠原步·16)는 스타일난다 하라주쿠 매장을 찾아 “포장도 병도 예뻐서 장난감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타일난다에선 화장품 ‘3CE’ 중 우유 상자를 닮은 포장에 미백화장품이 인기다. 이곳엔 첫날 3000명이 찾았다. 또 한 달 새 2만8000개 제품이 판매됐다.닛케이는 한국에서도 일본 상품과 콘텐츠에 대한 인기가 부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맥주다. 국내에서의 일본 맥주 판매량은 53억엔(약 530억원)으로 2013년보다 두 배 증가했다. 아사히맥주는 ‘소맥’ 문화를 뒤집는 마케팅으로 200여 브랜드가 경쟁하는 수입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 20%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아사히맥주로서도 한국은 최대 수출시장이 됐다. 기린, 삿포로 등 다른 일본 맥주 브랜드도 이에 뒤질세라 한국 시장 공략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맥주. AFP


한국 내 일본 화장품도 인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일본 화장품 판매량도 20% 이상 늘었다. 시세이도(資生堂)의 ‘끌레드뽀 보떼’ 같은 고급 제품은 물론 ‘폴라 오비스 홀딩스’의 ‘쓰리(Three)’ 같은 20대 겨냥 중견 브랜도 진출하고 있다. 관광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일본 관광객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500만명을 넘어섰다.

소설과 만화를 중심으로 일본 콘텐츠 역시 국내에서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와 무라야마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의 팬층은 국내에서도 두텁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역시 인기다. 일본 만화 소비도 꾸준하다. 한국은 미국, 프랑스에 이은 3대 일본 만화 소비국이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도 관객 36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인기를 끌었다.

양국의 상품·문화 콘텐츠 교류가 늘며 의식주와 관련한 양국 교역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양국 교역액은 2200억엔(약 2조2000억원)으로 2010년보다 20% 늘었다. 소재·기계류를 비롯한 전체 교역액이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성장세다.일본에선 앞서서도 두 차례의 한류 붐이 일었다. 2003년 ‘겨울연가’ 방영 후 ‘욘사마’, ‘지우히메’ 열풍 때다 첫 번째, 2010년 ‘소녀시대’와 ‘카라’ 등 여성 아이돌 그룹의 등장이 두 번째다. 최근이 세 번째 한류 붐이다. 그러나 이 붐은 혐한 역풍 탓에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에선 2011년엔 후지TV에 대해 ‘한국 드라마만 방송하지 마라’며 반발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혐한 운동이 펼쳐졌었다.

이번은 다르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강만석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원장은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최근 젊은 층은 스마트폰 동영상이나 소셜 네트워크(SNS) 같은 새로운 접근 방식에 친숙하며 여기선 제품·콘텐츠에 대한 국적 의식 없이 좋아하는 걸 공유한다”고 분석했다. 실시간으로 유행이 확산하는 SNS에선 혐한 움직임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전 한류 붐은 그 대상이 20대 이상이고 이를 접하는 매체도 TV 등 기존 매체였다.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의 권용석 교수는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같은 정치·역사 문제로 양국 관계는 흔들리고 있지만 이와 무관한 사람, 제품의 양국 교류는 팽창하는 중”이라며 “정치와는 별개의 문화가 서로를 존중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도쿄 하라주쿠 다케시타 거리에 나란히 보이는 ‘에뛰드하우스’(오른쪽)와 ‘스타일난다’ 매장. (출처=닛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