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발에 오줌누기' 한전 자구안…전기요금 올려야 회생 가능

by윤종성 기자
2022.05.18 17:55:29

자산매각·긴축경영 '반짝 효과' 그쳐
팔면 팔수록 손해나는 구조 손 봐야
"전기요금 최소한 20% 인상" 주장도

[이데일리 윤종성 김형욱 기자] 올 1분기에만 무려 8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한국전력공사(015760)가 경영 위기 타개를 위해 마른 수건을 쥐어 짜는 6조원 이상의 고강도 재무 개선 대책을 내놨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전기요금 인상과 같은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 없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나 마찬가지인 땜질 처방,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자산매각·사업 조정은 근본적 해결책 아냐”

한전과 발전자회사 등 전력그룹사 사장단은 18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긴급 개최하고 6조원 이상의 고강도 자구 노력과 경영 혁신 등의 내용을 담은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경영 위기 타개를 위한 이번 재무구조 개선방안에는 △한국전력기술·한전KDN 등 출자지분 매각 8000억원 △의정부 변전소 부지 등 부동산 매각 7000억원 △필리핀 세부·SPC 합자사업 연내 매각 등 해외 사업 구조조정 1조9000억원 △하동 1~6호기 보강 투자 연기 등 긴축 경영 2조6000억원이 포함됐다.

이 같은 뼈를 깎는 재무구조 개선 방안은 심각한 지경에 이른 적자규모 때문이다. 지난해 5조8601억원였던 한전의 적자규모는 올 들어 더 불어나 1분기에만 7조7869억원에 달했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연간 적자 규모를 한 분기 만에 뛰어 넘은 역대 최악의 실적이다.

하지만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 방안 발표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자산 매각과 사업 구조조정이 한전 적자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자산 매각과 사업구조 재편은 재무구조 개선에 잠시나마 도움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전기요금 현실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략정책연구팀장도 “긴축경영, 출자지분 매각 등을 통해 6조원을 마련한다 해도 전체적인 적자 구조에서 보면 극히 일부를 메우는데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료비 연동제를 통한 탄력적인 요금 조정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전이 적자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료비 연동제는 석유,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 전기 생산에 들어간 연료비 변동분을 3개월 단위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탄력적 요금 조정을 통해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겠다던 도입 취지가 달리 정부 편의에 따라 정치적으로 운영되면서 한전이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올 1분기만 봐도 그렇다. 한전이 1~3월 발전 자회사용으로 사들인 연료비는 7조6484억원으로 지난해(3조6824억원)보다 92.8% 늘었다. 발전사들에 지불한 전력 구입비 역시 10조5827억원으로 111.7%나 증가했다. 하지만 이 기간 한전의 전기판매 수익은 15조3784억원으로 전년대비 7.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력을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에 사들였지만, 동일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판매하다 보니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정부는 물가 인상률 억제 등을 이유로 연료비 상승분을 제때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1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전력그룹사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한전)
치솟는 연료비..“전기요금 현실화 시급”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로 인한 연료비 상승으로 전력구입 비용이 치솟고 있어 올해 한전의 연간 적자는 30조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오는 전력도매가격(SMP)은 4월 ㎾h(킬로와트시)당 202.11원을 기록했다. SMP가 ㎾h당 200원을 돌파한 것은 2001년 전력도매시장 개설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거침없이 오르는 원유, LNG 가격 등을 감안하면 SMP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처럼 한전 적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늘어날 경우 결국 혈세로 메워야 하는 것도 문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한전이 3조6000억원대 적자를 냈을 때 정부는 668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오는 6월 말 발표하는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부터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3년 6개월 만에 최대 폭 상승하는 등 고물가 상황이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조정단가 상향에 회의적인 시각도 팽팽하다.

정연제 팀장은 “지금과 같은 고물가 국면에서 전기요금을 올리면 서민경제가 파탄난다고들 하는데, 이대로라면 한전이 먼저 파탄나게 생겼다”면서 “올 들어 국제유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전기요금은 최소 20% 이상 올려야 하며, 그래야 불필요한 전기 소비도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진 교수는 “한전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기요금 인상밖에 답이 없다”며 “이날 발표한 한전의 재무개선 노력은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기에 앞서 고통을 분담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전력공사 전력그룹사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하는 그룹사 대표자들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