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미국in]"나 떨고 있니?" 월가 저승사자 재무장관 만나나

by이준기 기자
2020.07.02 18:44:54

바이든 대선 승리 땐…워런, 재무장관 후보 '1순위' 거론
월가 규제의 선봉장…월가 "강력한 재무장관 될 것" 벌벌
최선의 시나리오는 트럼프 승리…아니면 블룸버그 선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그를 대통령으로 만나는 것은 피했지만, 재무장관으로선 맞닥뜨릴 수 있다.”

최근 월가(街)에서 자주 회자되는 얘기다. 주인공은 한때 미국 야당인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혔던 엘리자베스 워런상원의원이다. 오는 11월3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현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꺾을 경우 재무장관에 워런 의원을 앉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워런 상원의원은 월가에 메스를 들이대겠다는 뜻을 수차례 공언해 왔다.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많은데도 불구, 워런 의원의 재무장관 기용설만으로도 월가가 떠는 이유다.

사실 워런 의원이 장관급으로 가기엔 체급이 맞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부통령 직이 더 어울릴 수 있지만, 최근 반(反) 인종차별 시위 등의 여파로 바이든 전 부통령은 러닝메이트에 ‘흑인 여성’에 더 관심을 둘 공산이 크다. 정치적 현실도 녹록잖다. 그가 상원의원에서 물러나면 공화당 소속의 찰리 베이커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차기 상원의원 선거 때까지 후임을 지명해야 하는데, 이는 민주당으로선 한 석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이번 11월 선거에서 백악관과 상원까지 장악할 경우 워런이 의회에서 더 영향력을 행사하는 쪽으로 무게를 둘 수도 있다. 재무장관 직을 사양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워런 의원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건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 타이틀을 거머질 수 있는 데다, 평소 그가 주창해왔던 대(對) 월가 정책을 맘껏 펼 수 있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그간 워런 의원은 △대형은행 분할 및 규제강화, △부유세 부과 등을 강력히 옹호해왔다. 또 은행 임원에 대한 보상 제한, 자본 요건 강화, 기후변화 위험에 대한 대비 등도 촉구해왔다.



투자은행 코언 산하 연구소인 코언 워싱턴 리서치 그룹의 재럿 시버그 애널리스트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워런 의원을 재무장관에 앉힐 경우) 금융·경제 정책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워런에게 위임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워런은 상당히 강력한 재무장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월가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 재무장관은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감독하는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 의장을 겸직하게 된다. 사실상 은행 규제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 통화감독청장,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소비자금융보호국 국장 등 중요한 요직 역시 워런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월가에서 “워런이 재무장관이 된다면 은행에 대해 상당히 가혹히 대할 것”(키페 브루예트앤드우즈의 브라이언 가드너 리서치 부문 부회장)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월가에 최상의 시나리오는 트럼프 대통령이 4년 더 백악관에 머무르는 것이다. 이 경우 현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월가 통제권을 놓지 않을 수 있다. 실제 월가(골드만삭스) 출신인 므누신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비교적 잘 맞추고, 시장을 진정시키는데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므누신 장관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재무장관으로서) 4년 더 함께 일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좀처럼 반등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일(현지시간) CNBC.체인지리서치의 6개 경합주(애리조나·플로리다·미시간·노스캐롤라이나·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여론조사(지난달 26∼28일·유권자 3729명·표본오차 ±1.6%포인트) 결과를 보면, 바이든 전 부통령이 50%의 지지율로 44%에 그친 트럼프 대통령과의 격차를 더 벌렸다. 2주 전 같은 기관의 조사에선 바이든 전 부통령 48%, 트럼프 대통령 45%였다.

워런 의원 외에도 월가에선 오바마 행정부에서 연준 이사를 지낸 사라 블룸 라스킨 전 재무부 차관, 로저 퍼거슨 교직원보험연금협회(TIAA) 최고경영자(CEO),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를 지낸 피트 부티지지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 중에서도 월가는 블룸버그 전 시장을 밀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버그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는 적절한 시기에 코로나19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적임자일 것”이라면서도 “블룸버그는 민주당에서도 너무 주류에 속해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의 능력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사진=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