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기타 제작 꿈꾸던 콜텍 노동자의 눈물, 13년 만에 그쳤다

by손의연 기자
2019.04.23 18:27:58

23일 콜텍 노사 교섭 타결 조인식, 기자회견
노조 "부족하지만 단식 조합원 건강 고려해 합의"
파인텍·콜텍노조 잇따라 사측과 교섭 타결

콜텍 노사 조인식이 열린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콜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 주최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손의연 김호준 기자] ‘13년. 4464일’ 국내 최장기 분쟁 사업장으로 남았던 콜텍 노사의 줄다리기가 마침내 끝났다. 42일 단식농성을 벌였던 임재춘 콜텍 노조 조합원은 “정년을 못 채우고 나가서 아쉬운 것보다 명품 기타를 만들고 싶었는데 못 만들어서 아쉽다”고 눈물지었다.

23일 노사 간 합의에 따라 임재춘 노조원을 비롯한 김경봉, 이인근 노조원은 오는 5월 2일자로 회사에 복직한 후 5월 30일부로 퇴직할 예정이다.

국내 최장기 분쟁 사업장으로 남았던 콜텍 노사는 지난 22일 잠정합의를 이룬 데 이어 23일 교섭 타결(합의) 조인식을 가졌다. 이인근 콜텍 노조지회장과 임재춘 콜텍 노조 조합원은 서울시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42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임재춘 조합원은 23일 노사가 모두 참석한 조인식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측을 보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아직 철거하지 않은 농성장을 지켰다.

임재춘 조합원은 “사실 중소기업 사장이 저지른 일을 국가가 처리해준 것 아니냐”라며 “대한민국이 이런 현실에 대해 아무도 몰랐었다. 앞으로 자식이나 조카가 어떻게 밥을 먹고 살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울먹였다.

이인근 지회장은 앞으로 삶과 다시 투쟁에 나서야한다는 부담감에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입을 뗐다. 그는 “후련함이 20%, 안타까움이 80%다”라며 “박영호 콜텍 대표가 조인식 때 어떤 마음에서 환한 웃음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은 13년 동안 가정을 잃고 거리에서 지내왔는데 그 자리에서 꼭 그래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콜텍은 2007년 당시 국내 1위, 세계 3위인 굴지의 악기회사였다. 그러나 콜텍은 돌연 국내 공장을 폐쇄하고 물량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넘겼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국내 노동자 250명을 정리해고했다.

이에 대해 조합원들은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2009년 서울고등법원이 사측의 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함에 따라 안도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대법원은 2014년 6월 “미래를 대비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지회장은 “2009년 고등법원의 판결을 받고 좀 있으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며 “그러나 대법원이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해 하늘이 꺼지는 듯한 절망감을 맛봤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콜텍 대법원 판결에 대해 쌍용차, KTX와 함께 박근혜 국정운영 뒷받침 사례이자 박근혜 노동개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판결이라고 확인한 것은 지난해 5월에 들어서다.

이 지회장은 대법원 판결 당시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이 박영호 대표보다도 밉더라”며 “우리는 힘이 없고 절대 권력인 국가기구는 늘 횡포를 저지르고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노사는 23일 해고 노동자의 복직과 위로금 지급, 국내 공장 재가동시 우선 채용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합의 조건보다 노동자의 명예를 지켰다는 자부심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 지회장은 “어차피 국내 공장이 가동돼도 가고 싶은 조합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사측이 노조의 진심을 짓밟으며 당일복직, 당일퇴사를 요구했을 땐 당황했지만 우리는 그런 굴욕을 참으며 교섭을 진행해 결과를 이뤘다”고 강조했다.

두 노동자는 13년간 기나긴 투쟁을 이어올 수 있던 이유로 “더 나은 노동조건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이 지회장은 “우리 애들도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 텐데 우리가 포기하면 아이들도 부당한 해고를 당할 거라고 생각했다”라면서 “또 노동자가 지치지 않고 싸운다는 하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임재춘 조합원은 “우리는 비록 이렇게 살지만 젊은이들이 희망이 없다는 게 정말 심각한 문제”라며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 개혁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