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사·공수처…여권 십자포화 속 `한명숙 사건` 진상조사 나선 檢

by최영지 기자
2020.06.02 17:17:51

`증거조작·위증종용` 진정사건 인권감독관에 배당
진정인 조사 시작으로 당시 수사 과정 사실관계 파악
법조계 "징계시효 다 된 사안" 수사 전환 가능성 미지수

[이데일리 최영지 기자]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둘러싼 여권의 십자포화 속에 검찰이 본격적인 진상 규명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검찰 수사팀이 증인에게 위증을 종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조사 과정에서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발견될 경우 수사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법조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상당히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면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법무부는 일단 검찰의 자체 조사가 우선이라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사진=노무현재단 제공)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당시 검찰 수사팀이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동료 수감자들에게 위증을 회유, 압박했다는 취지의 진정과 관련해 검찰은 전날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 배정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인권감독관은 검찰의 인권 옹호 기능과 내부 비리를 근절하는 감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2017년 신설된 직제로 부장검사급이 맡는다.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 관련 진정사건, 내부 구성원 비리 관련 감찰 사건과 피해자 보호가 주 업무인 만큼 배당 자체가 감찰이나 수사 착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우선 한 전 대표의 동료 수감자였던 진정인 최모씨 조사를 시작으로 당시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허위 증언을 종용했는지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수사 관행 관련 사건은 인권감독관에 배당된다”며 “진정서 등을 검토한 뒤 수사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 2011년 한 전 총리 재판 당시 검찰 측 증인으로, 한 전 대표가 구치소에서 `검찰에서 진술한 게 맞지만 법정에서 뒤엎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가, 9년 만인 최근 당시 증언은 검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입장을 바꿨다. 검찰이 위증을 교사해 한 전 총리와 한 전 대표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취지다. 최씨는 검찰의 위증 교사와 증거조작 등을 조사해 달라며 지난 4월 법무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여권에서는 연일 당시 검찰 수사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재심은 청구 절차가 복잡해 현재로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다만 수사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를 검찰과 법무부가 자세히 조사해 보겠다는 것이라 좀 더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당시 한 전 대표를 변호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최 대표는 신임 지도부 기자간담회에서 “재조사가 아니고 새로 드러나고 있는 범죄사실에 대해 당장 수사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법조계에선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인권침해 부분을 들여다 보려고 인권감독관에 배당된 것 같다”며 “인권감독관이 혐의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리게 될 것으로 보이고 진정인의 주장이 허위로 판단된다면 무고로 결론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고소·고발이 아닌 사건을 형사부에 배당하는 것은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당시 강압수사가 있었는지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징계시효가 다 된 사안이라 조사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 전 총리 사건 재판 당시 위증교사를 주장하고 있는 다른 수감자 한모씨도 조만간 당시 수사팀을 포함해 전현직 검사 13명을 직권남용, 모해 위증교사 혐의 등으로 고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